퇴원 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집 밖을 나섰다. 30여 년이 조금 넘는 삶을 살아오면서 마주친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퇴원했다는 말 한마디에, 같이 밥을 먹자는 하 마디에 흔쾌히 응답해 주고 시간을 내어준 고마운 분들이다.
십 수년을 알고 지내온 사람들에서부터 이제 얼마 되지 않은,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퇴원 후 혼자서 어떻게 운동해야 하는가 고민하던 찰나. 자신은 지금 사용하지 않는 링피트를 빌려준다던 친구의 제안이 있었다. 때마침 다른 친구가 빌려준 스위치도 있겠다, 헬스비도 아낄 수 있겠다 싶어 냉큼 받아왔다. 다만.. 그 제안을 하던 친구의 얼굴엔.. 평소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사악한 미소가 자리 잡고 있더라.
링피트를 받아온 후, 내 몸 상태는 일절 신경 쓰지 않고 남자라면 정면 승부를 외치며 당당히 정면 승부 난이도를 골랐다. 그렇게 약 사흘의 시간이 흘렀고. 친구들이 있는 카톡방에 메시지를 하나 남겼다.
'나 헬스장 간다.'
그렇게 내 인생의 링피트는 사라졌다. 다신 안 할 거다. 차라리 헬스장을 가는 게 더 낫다.
링피트라는 원흉의 아이디어를 건네준 친구들은 이 외에도 종종 만나곤 했다. 사실 내가 심심해서..
한 번은 고기를 먹으러 가자는 말에 다 구워서 나오는 고깃집을 찾아갔다.
"너네 뭐 먹을래?"
"나는 비계 안 좋아해. 목살이 좋아."
"나는 삼겹살."
목살 반 삼겹살 반 메뉴에 고기 1인분을 추가하여 주문하였다. 난 크게 상관하지 않았기에 그저 눈앞에 있는 걸 우적우적 집어먹기 바빴는데, 음식이 점차 사라질수록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 난 삼겹살을 집어먹은 기억이 없는데 왜 삼겹살은 없고 목살만 있는 거지?
알고 보니 비계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친구가 글쎄 삼겹살만 쏙쏙 골라먹고 있던 것이 아니던가. 이 위선자 같으니. 비계 싫어한다며 비계가 삼중으로 점철된 삼겹살만 쏙쏙 골라먹었다 이거지?
아~ 스스로의 취향을 잘 몰랐던 거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렇게 고기를 다 비워내고
"이제 어디 감?"
"아 나 좀 배고픈데."
"오! 기깔난 아이디어가 있어. 치킨 고?"
"오 님 천재인 듯."
장난 100%로 던진 말을 진짜로 만들어버릴 줄이야. 그렇게 치킨집으로 자리를 옮기며 하는 말.
"우리 고깃집에서 1시간이나 있었어."
"와! 역대급으로 오래 있었네."
심지어 치킨집에 가서 치킨 한 마리를 남김없이 싹 다 먹었다. 든든하구나 얘들아 ^_^
부천에 다니던 이전 직장에 경력증명서를 떼고, 인천에 사는 친구와 만나 엘리멘탈 더빙판을 본 후 저녁을 먹었다.
통닭 안에 찹쌀이 들어있던 메뉴였는데, 누룽지마냥 눌어붙어 있던 것도 있어 정말 맛있게 먹었다. 마늘쫑과 함께 먹는 그 맛의 조화가 생각보다 괜찮았고, 양념은 좀 달았지만 뭔들 맛있으면 그만이지 뭐.
친구와 그간의 근황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이 친구는 내게 많은 영감을 심어주는 그런 친구다. 자신의 낭만을 좇아 한 걸음 한 걸음씩 그 발자국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스스로를 많이 되돌아보게 된다.
어딜 가면 으레 재밌는 걸 찾아서 한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막상 진짜 내가 원하는 그런 것일까에 대한 의구심을 지우지 못한 채 지내고 있는 나. 그런 나와는 달리, 이 친구는 현실에선 현실에서의 멋드러지는 삶을 꾸리고 있으며, 낭만적인 측면에선 낭만이라는 하늘을 날기 위한 꾸준한 날갯짓을 행하는 중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낭만을 찾아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영감을 찾게 해주는 그런 고마운 존재.
대학교 재학 당시 잠시 앙상블에 들어가 활동했던 적이 있다. 내부 이슈로 인해 해체됐지만, 그중 두 명의 멤버와 종종 안부를 묻곤 한다. 퇴원도 했겠다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고 싶다는 말에 흔쾌히 주말, 잠실로 나와 시간을 함께한 멤버들.
이 중 한 명은, 16년 3월 동아리 정기연주회 당시 기타와 바이올린 듀엣 무대를 꾸려보고 싶다는 나의 제안에 흔쾌히 수락, 함께 무대를 꾸렸던 경험도 있다. 지금도 그때를 종종 회상하곤 한다. 다시 한번 그런 무대를 꾸리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잠실에서 밥을 먹고, 커피 한 잔 하기 위해 곳곳을 돌아다니고, 아이쇼핑도 하며 수년간 만나지 못했던 회포를 풀어냈다. 몇 년 만에 봄에도 한결같은 그런 멤버들.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자주 혹은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며 비록 얼굴은 마주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원 후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레 다시 얼굴을 마주해 준 그런 소중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