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어린 왕자>와의 본격적인 만남은 09년 12월 겨울방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능 직후 보통의 고등학생들과 비슷하게 출석일수를 채우기 위한 등교와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 적당히 시간을 뗴울 무언가가 필요했던 때, 문득 <어린 왕자>를 다시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남아있던 <어린 왕자>에 대한 기억은 과거에 한번 얼핏 읽었다는 것과 그냥 재밌었다 정도의 것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다시 만난 <어린왕자>는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었다. 첫째, 이 책은 생각보다 훨씬 재밌다는 것과 둘째, '길들임'은 단순히 '길들다'의 사전적 정의로 끝나는 것이 아닌, 더 깊은 내용의 것을 풀어내고 있다는 통찰을 심어주었다. 당시 받은 신선한 충격은 나를 <어린 왕자>의 길로 안내하였고, 이후 매 년 최소 1~2번의 <어린 왕자>를 꼬박꼬박 만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어린 왕자>와 마주한 지도 어느덧 햇수로만 약 14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작년, 병원에서 조우한 <어린 왕자>는 하루빨리 퇴원하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에 의해 스쳐지나가는 시간의 일부에 불과했다.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학생 시절 당시 처음 마주했던 그냥 재밌었다 정도의 것과 다름없었고, 그래서 <어린 왕자>에게 내심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론 어린 왕자가 시시해진 어른이 되어가는 날 보며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퇴원 이후 일상으로 돌아온 후 정신을 가다듬고 갈 때 즈음,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서점으로 가서 책을 구매하고, 온라인에서 굿즈를 이것저것 구매하였다. 근 1년 간 내 환경에서 큰 변화가 불어왔던 터인지라, 그에 대한 극복과 적응에 대한 보상심리와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나는 것에 대한 설렘이 맞물린 결정이었다.
주문한 굿즈가 도착한 것을 받아보며 가방에 달고, 선반에 비치하며 <어린 왕자>에 매료된 나의 모습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고, 어린 아이 마냥 굿즈 하나하나에 감탄을 하는 내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순간이 이어졌다.
'무언가에 설레고, 기대하고,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아직 회색빛 가득한 매몰찬 어른이 된 건 아니구나.'
오랜만에 예전부터 사둔 <어린 왕자> 조명등에 전원을 켠다. 그 뒤에 놓여있는 여러 권의 <어린 왕자>를 바라보고, 그 옆에 놓여있는 자그마한 컵을 바라본다. 휴대용 가방에 달려있는 나의 키링 악세사리와 키링 시계. 마지막으로 새로 산 두 권의 <어린 왕자> 중 한 권의 책장을 넘겨본다.
이번에 마주하게 될 <어린 왕자>는 내게 또 어떤 영감을 불어넣어줄까 하는 설렘, 기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