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일자를 확정 지은 후, 노트북의 용도에 변화를 주었다. 지난 반년 간, 게임기로서의 훌륭한 역할은 잠시 접어두고, 밥벌이를 위한 도구로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 취업 사이트에 접속하여, 휴면계정으로 전환되어 잠들어있던 나의 계정에 친히 요란한 알람을 들려준다. 간단한 본인인증 절차를 마친 후, 직무와 관련된 자리를 찾아보고, 해당 기업의 현황과 히스토리를 조사하고, 경력기술서를 작성하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한다.
강제로 경력이직을 다시 하게 된 마당에, 경력기술서가 훨씬 더 중요함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이유는 무엇인고. 주객이 전도됐다는 이 찝찝함을 애써 무시해 가며 꾸역꾸역 서류지원을 한다.
재활치료 사이사이 틈나는 대로 자소서를 작성하고, 하루 일과를 마친 뒤의 저녁 시간에도 틈나는 대로 자소서를 작성해 가며 재취업의 문을 똑똑 두드려본다.
그렇게 최초로 서류 접수를 시작한 지 약 한 달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가뭄의 단비 마냥 면접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애매한 직무경험 덕분일 수도 있고, 경력기술서에 제대로 녹여내지 못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리라.
아무튼 처음 면접 연락을 받았을 땐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월요일에 걸려온 전화 한 통.
"그럼 지원자님은 지금 재직 중이신 건 아닌 거죠?"
"네. 재직 중인 곳은 없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9시에 면접 보러 오시겠어요?"
어?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내일? 바로 오라고?
"아.. 제가 내일은 조금 힘들고 이번주 목, 금 중엔 어려울까요?"
"아.. 그쵸. 아무래도 당장은 조금 무리가 있으시겠죠. 그럼 내부에서 회의해 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사흘의 시간이 흘러, 목요일 오전 9시에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지원자님, 혹시 안 오시나요?"
"네? 어떤 말씀하시는 걸까요? 월요일에 내부 회의 후 연락 주신다는 말씀 이후론 면접 관련 일정에 대해 전달받은 바 없습니다."
"아... 팀장님께서 전달했다고 생각만 하시고, 말씀은 안 해주셨네요. 그럼 정말 죄송한데, 이따 11시까지 와주실 수 있나요?"
???????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지? 당장 2시간 뒤인데??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어 현재 입원 중이어서 최소 하루의 시간은 필요하다는 답을 준다.
"아.. 입원 중이시군요. 그럼 후에 저희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퇴원 후 8월 초, 해당 기업 인사팀에서 다시 연락을 줬고 어찌어찌 면접을 보러 갔다.
꼭 한번 보고 싶었다는 인사팀장. 면접이 진행되는 와중에 다소 황당한 키워드를 듣는다.
"밍님은 본인이 다른 사람에 비해 어떤 걸 좀 잘한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한 번 제가 해야겠다 맘먹은 것에 대한 추진력이 남다릅니다."
"아 그래요? 그럼 그 반대의 경우는요?"
"반대의 경우는, 대략적인 정보들만 파악하고 있다가 타인이 필요로 할 때, 제가 인지하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편입니다."
"아 그럼 상반되는 것들을 다 잘한다는 말씀이네요?"
난 이때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그렇다고 대답했다.
"음.. 네..? 그렇죠."
이후 난 내 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심리학 박사는 아니지만, 전 이렇게 생각해요. 사람이 상반되는 것을 잘하는 건 있을 수 없고, 설령 가능하다고 하면 그건 정신병자라고요."
뭐? 정신병자? 아니 면접자리에서 인사팀장이라는 사람이 입에 올릴 만한 워딩인가?
이 단어를 듣는 순간 생각했다. 2차 면접 연락이 오더라도 난 절대 안 갈 것이라고. 그리고 여기 괜히 왔다고.
당일날 11시까지 면접 올 수 있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애당초 면접 보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고. 그리고 내 평생 이 기업의 서비스는 절대 이용하지 않겠다고.
이후 이 질문의 의도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하더라.
"아무래도 회사다 보니 하고 싶은 일만 할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하기 싫은 일이 주어지면 어떻게 하실 거냔 질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