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란치스카 May 24. 2024

2020.10.23

내 아이의 마지막 오늘

가까운 분들께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야만 했다. 아이가 병원에 있을 때 헌혈증도 모아 주시고 늘 기도해 주신 사촌언니 내외와 친구에게도 전화를 했다. 사촌형부가 다른 생각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말씀에 불현듯 아이가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신실한 가톨릭신자는 아니지만, 퇴원하면 꼭 성당에 같이 다녀야지 생각했던 나로서는 지금이라도 세례성사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병원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친구가 신부님을 알아봐 줘서 당장이라도 병원으로 세례를 주러 오시겠다고 하셨는데, 중환자실 코로나 방침 때문에 신부님도 출입이 제한되어 내가 대신 성사를 주게 되었다. 


"심 세바스티아노" 


아이의 소식을 듣고 구미에 계신 아이 큰아빠, 부산에 있는 이모도 새벽에 하나둘 병원으로 도착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많이 좋아져서 곧 일반병실에 올라갈 것 같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갑자기 이런 소식에 다들 어안이 벙벙한 듯했다. 22일 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했던 우리 아들은 큰아빠랑 이모가 병원에 오기를 기다렸던 것 마냥 그날 밤을 넘기고 그다음 날 아침까지도 잘 견뎌주고 있었다. 멍하니 앉아서 생각했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우리 애 숨 끊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이렇게 손 놓고 준이가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내가 무슨 엄마야...'




그렇게 날이 밝았다. 교수가 중환자실을 들렀다가 가족상담실로 왔다. 형준이가 아직까지 잘 견뎌주고 있지만,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심박동수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떨어져 버린다며 이제는 중환자실 안에 들어가서 아이 곁에 있으라 했다. 차례차례 안 들어가도 되고 이젠 엄마랑 아빠가 같이 들어가도 된다고 했다. 

예전에 일주일에 한 번씩 면회가 가능할 때, 애가 의식이 있을 때 단 5분이라도 엄마 아빠 같이 좀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할 때는 안된다더니, 지금 애는 우리를 볼 수도 없는데 이제야 선심 쓰듯 같이 들어가라고 말한다. 이제야... 


다시 만난 아이는 여전히 많이 붓기는 했지만, 한결 편안해 보였다. 의식이 없으니 편안해 보이는 건 당연한 거지만. 

이젠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을 한 모양인지, 새벽까지 최대 용량으로 쓰던 승압제도 끊었다고 했다. 그러니 곧 혈압이 떨어질 테고, 그러면 심박수도 급격하게 떨어질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의 심박동수는 90~100대를 유지했고 혈압도 아직은 잘 유지되고 있었다. 


"준아, 눈 좀 떠봐. 엄마랑 아빠 왔는데... 밖에 할머니도 있고, 이모랑 큰아빠도 와 있어. 얼른 눈 좀 떠봐. 엄마 좀 봐봐. 엄마가 너 이렇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 네가 엄마 아들이어서 항상 행복했었어. 그러니까 엄마 두고 가지 마..." 


마치 아이가 대답이라도 하듯 입술이 움찔하고, 손가락도 살짝 들썩였다. 레지던트에게 아이가 반응을 하는 것 같다고 했더니, 아니라고... 그냥 의미 없는 신체 반사 반응인 것 같다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아이는 그러고도 몇 번이나 힘을 내는 듯 보였다. 심박동수와 혈압이 조금씩 떨어지다가 다시 오르기도 했고, 금방 떨어질 거라고 말한 의사 예상과는 달리 4~5시간을 더 버텨주었다. 형준이도 오랜만에 만난 우리랑 헤어지기 싫었던 걸까. 


"준아, 네 맘 알아. 엄마가 너 그동안 너무 고생한 것도 다 알아. 그러니까 너무 힘들면... 이제 그만 애써도 돼. 엄마도 너무 보내기 싫지만, 네가 힘든 건 더 싫어. 이제 우리, 집에 가자."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심박동수와 혈압, 산소포화도를 체크하는 기계에서 경고음이 났다. 고개를 들어 기계를 보니 7~80대를 간간히 유지하고 있던 심박동수가 갑자기 50대로 툭 떨어지더니 28.. 0으로 순식간에 떨어져 버렸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준아~ 준아! 안돼, 준아~"만 정신없이 외쳤던 것 같다. 맞은편에서 신랑이 외쳤다. "자기야, 정신 차리고 준이한테 얘기해. 좋은 얘기 해주라고!!!" 

그제야 난 "준아, 엄마가 정말 미안해. 힘들게 해서 미안해. 이제 더 이상 아프지 말고 편히 쉬어. 너무 사랑해, 우리 아들. 정말 사랑해... 엄마 아들로 다시 태어나 줘..."라고 떠나는 아이의 귀에 속삭였다.      

비록 기계호흡이었지만, 숨 쉴 때마다 들썩이던 우리 아이의 가슴이 이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내 전부였던, 내 아들 형준이는 

고작 12년을 살고, 2020년 10월 23일 오후 1시 40분... 우리 곁을 떠났다.

작가의 이전글 2020.10.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