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어디로 간 걸까

by 새벽뜰


내 마음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해도, 내 마음을 알아주던 사람은 분명 있었다. 알아준다는 것이 대충 얼버무려서 호응을 하는 불성실함이 아니라 꼭 나를 구성하는 유기체인 듯, 몹시도 성실하고 충실하게 알아주었던 것을 말한다.

휴대폰 연락처를 열람하면 등록된 번호는 적어도 허심탄회하게 마음 터놓을 상대는 한 두 명씩 꼭 있기 마련이었다. 관계에서 소홀이 한 것도 아니지만 드문드문 안부를 물으며 웃음과 슬픔을 공유하며 지내던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허용된 삶을 살다 보니 서로에게 점점 뜸해지게 된 거다. 나도 그렇게 그들에게 쏟았던 애정과 관심을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에게 쏟아붓게 되었으니 서로의 멀어짐에 서운함을 느낄 자격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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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보며 많은 걸 느꼈다. 사물이나 사람에게 투사가 적용되면 옳음과 보편성과 객관성은 흐릿해진다. 막연히 아름답다, 눈이 맑네, 하는 식으로 미사여구를 끌어올 수도 있겠고 외로워 보이는구나, 많이 슬퍼 보여, 하는 식으로 슬픔을 드러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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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 등록된 연락처는 그날의 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번호들이 저장돼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 왜 연락을 먼저 해 차 한 잔 하자 말하고 싶은 사람은 전보다 더 없을까. 아, 아니다. 분명 존재하긴 한다. 다만 그들은 , 나와는 너무 멀리 있거나, 당장은 힘들다거나,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에 먼저 가 있다거나 할 뿐이다.

당신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어디서 무얼 하며 무엇을 하고 살기에 밥 한 번 먹자,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을 들을 수가 없게 된 걸까. 그리고 나는, 왜 그런 시간과 여유를 스스로에게 허락해 주지 못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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