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만 있던 남다른 떡잎
나의 기억 속에 없는 행복
"몇 살 때부터 기억을 해요?"
어떤 이가 질문을 했을 때 황당하게도 나는 다른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우리가 기억을 공유할 만큼 서로 친한 사이였던 가요?" 나는 소심함이 마음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어서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톡 쏘듯 사이다 발언을 하지는 못했다. 막연한 궁금증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분위기를 흐려놓기엔 오가는 분위기가 따뜻했고 화사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상대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기 위한 나의 노력이 빛을 발해 부드럽게 대화는 이어갈 수 있었다.
"저는 유치원 때부터가 아닐까 싶어요." 기억을 곱씹어 보면서 중얼대듯이 말했다. 상대방의 이어지던 또 다른 대답을 듣기 전까지도 나는 기억을 꺼내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래요? 전 세 살 때부터 기억이 나거든요." 아, 이 사람도 나만큼이나 희한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네. 엄마 뱃속에서부터 , 양수에 둥둥 떠 고요하던 시간부터 기억난다고 하지 않는 게 어디냐.
엄마가 유치원에 데려다주면 나는 엄마보다 더 빨리 집에 돌아가 울었다. 신발도 신지 않고, 그 와중에도 집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을 기억해내서 집으로 달려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도망갈지도 몰라. 엄마가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 다 큰 어른의 시선에서 본다면 아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현상이지 할 수 있었겠지만 모든 사람을 고개가 아플 정도로 우러러봐야 했던 꼬마인 나는 내가 존재해야 했던 공간 속에서 항상 무서웠다. 사람들은 걸리버처럼 커다랗게 보였고 지금 가지 않으면 엄마와 이어진 미약한 실타래가 투명하게 변해서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런 나를 이해해주던 사람은 없었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빴던 가족과 나 아니고도 신경 써야 할 아이들이 한 두 명이 아니었을 선생님, 다 고만고만 도토리 키재기 하듯 어린 또래들. 나를 보살펴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꺼내 본 적도 없다. 그저 반복된 일상에 익숙해졌을 뿐. 어른들은 그런 내 어린 속도 모르면서 함부로 답을 내렸다. "이제야 적응을 하나 봐요." 그러면 안 됐을 익숙함에 물이 들어서 원망하는 방법도 배워보지 못한 채로 나는, 불안한 어른이 되었다.
선생님 얼굴을 가만가만 만져 보면서 "선생님 얼굴은 가면이에요?" 했던 건 호기심이라고 보기엔 심오하고 슬펐던, 사람에 대한 의심이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너무 이상하고 기이한 현상이다. 또래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즐겁게 미끄럼틀도 타고 그네도 밀어주던 기억 , 즐겁고 행복한 아이의 기억이 분명 내게도 있다. 그런데 왜, 나는 나를 불행한 아이로 점찍어 놓고 살았던 걸까. 모두 치열하게 사는 와중에 나처럼 작은 아이에게 잘 익어 붉어진 열매처럼 달콤한 말 한마디를 해주던 어른이 없었다. 어쩜 이렇게나 예쁠까. 옳지, 아주 잘했네. 참 별것도 아닌 칭찬을 나는 너무 바랐었는데 말이다. 이런 마음 , 살다가 언제라도 느낄 수는 있겠지. 근데 왜 하필, 내가 아주 어려 따뜻한 둥지가 필요했을 그 시절에 이런 슬픔과 절망과 공포를 느꼈어야 했던 거냐고. 다 커서, 이젠 조금씩 그 말을 되돌려줘야 할 입장에 나는 좀 많이 서글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