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토막 우정

그건 아마 깨어지기 쉬운 유리 같은 것

by 새벽뜰

뾰로통하게 입술을 다물고 졸업사진을 찍었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그런 표정으로 사진을 찍은걸 많이 후회했다. 겨우 유치원생이 그런 표정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이다움을 잃고 이미 어른이 된 것처럼 세상살이가 다 그런 거지 뭐, 하면서 시니컬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를 마주하면 한 번씩 샘솟는 감정은 기막힘이었다.


이미 나는 말보다 감정을 더 많이 깨우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글과 책을 가까이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다.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책을 읽고 감상문 쓰는 일이 내게는 훨씬 더 쉬운 일이었다. 글에는 표정도 목소리도 없으니 더 신중을 가해야 했지만 나의 생각과 의미가 왜곡이 되어 삐딱한 선을 타고 뒤틀리는 건 용납하기 싫었다. 안도한 건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은 고칠 수 있다는 것. 문제는 얼굴을 마주 보며 목소리를 잘 들어야 했던 말이었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들려오는 내 이야기는 그것이 좋은 것이든 아니든 목적과 상관이 없이 마음을 콩닥거리게 했고 나를 감싸는 중력이 모두 사라진 것처럼 몸과 마음을 우주 저 끄트머리로 날려 버리는 것 같은 불안을 주었다.


아직 오롯하게 감정 추스르는 법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앉고 싶은 사람과 앉으라는 선생님의 명령은 아주 이기적인 것이었다. 내가 짝지로 삼고 싶은 아이가 나와도 짝지가 되고 싶어 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고작 짝지를 찾는 일에 소개팅 남을 쟁취하듯이 열정적으로 구애라도 해서 싸워야 했단 말일까. 다행스럽게도 조금씩 커가면서 나의 외로움을 방치하지는 않았다. 내 감정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은 생겼단 소리다. 갖고 싶은 건 가져봐야지 하는 오기도 생겼다. 그렇게 한 달간 함께 앉을 친구들을 모두 찜해놓은 나였다. 어느 날 등교를 해 반에 도착하고 나니 나와 앉기로 한 아이가 다른 아이와 앉아 짝지가 되어 있었다.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않은 나를 본 친구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미안해, 얘가 나랑 꼭 앉고 싶다고 해서... 내일은 꼭 너랑 앉을게. " 그건 글이었을까 말이었을까. 내가 너랑 내일 같이 앉으면 내일 나랑 앉기로 한 애는 오늘의 나처럼 꿔다논 보릿자루 되는 거냐? 하지만 난 별 말 않고 가장 끄트머리 자리로 가 당당히 혼자 앉는 걸 택했다. 그럴 수밖에. 비어버린 내 옆자리엔 무거운 가방을 누군가를 대신하듯 앉혀두었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졸지에 나를 보릿자루로 만들어버린 그 아이는 그날 이후 틈틈이 나를 보며 눈을 마주치려 했지만 나는 치솟는 분노를 차분한 냉대로 돌려주었다.


혼자가 될지 몰랐던 아이에게 덜컹 내려진 혼자라는 두려움은 그와 비슷한 상황에 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후유증을 남겼다. 선생님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나는 나쁜 아이가 되고 못된 아이가 될 것이 뻔한데 반항이랍시고 나는 못해요! 안 해요! 할 수는 없는 거였으니까.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버거운 감정이었다는 걸 지금 그 선생님은 인식하게 됐을까. 아마 새카맣게 잊어 오히려 내게 물을지도 모른다. "넌 그런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니?" 오히려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릴 땐 이런 마음을 똑똑하게 표현할 줄 몰라 억울하고 어른이 된 후엔 고작 이런 걸로 성질을 내냐며 옹졸한 사람이란 평을 들을지도 몰라서 참아야 한다. 그러니까 선생님, 그냥 짝지는 정해주는 걸로 하세요. 엄한 우정 깨뜨리지 마시고요.

아이에게 있어 어른의 역할은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게만 있던 남다른 떡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