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도 껍데기가 있다
종이에 가장 많이 적힌 단어
지금은 그럴 수 없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시외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면 심심풀이로 땅콩을 먹거나 목을 축이려 커피를 마시고는 했다. 땅콩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한 두 알 먹다가 보면 '아, 이래서 먹는 거구나.' 하며 땅콩이 가진 매력을 느낄 수도 있었다.
평소 많이 하는 행위가 자신을 대변해 주고 가장 많이 적는 종이 위에 단어와 문장들이 현재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주된 감정이라 했다. 책을 읽다 보면 다른 화자의 입에서 같은 말이 흘러나올 때가 있다. 똑같은 문장을 쓰기란 불가능해도 의미가 같은 말을 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니까. 내가 적고 있고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의 조합은 내 의지와 상관이 없이 습관처럼 던져지는 말들 같았다. 내 생각엔 분명 '완전히 다른 색깔 이야기' 라면서 믿었지만 까놓고 보면 같은 내용이 수두룩했다. 진한 분홍 , 옅은 빨강, 어두운 빨강, 연한 분홍 이런 식이었단 말이다. 나의 뇌구조와 마음밭이 왜 이렇게 요란히 침체가 되었는가에 빠져 다시 편안한, 편안하다고 잘못 알고 있었던 습관 된 우울에 허우적거리려고 하다가 콩깍지 씐 습관을 잡아다가 땅바닥에 패대기쳐 버리고 생각의 교정을 시작해 봤다.
"너는 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처럼 스스로를 생각해?" 같은 말을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직접적으로' 들었을 때의 기분이란 뭐랄까. 활자로 눈에 박혔을 때보다 목소리로 전해져서 귀에 부딪힌 말은 훨씬 더 파장이 컸다. 너의 생각은 하등 쓸데가 없고 버려져도 타지도 않을 몹쓸 것이다.라는 말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내가 땅콩이었다면 온 몸이 쪼개졌을 때 이런 아픔을 느끼게 됐을까. 우주가 나를 밀어내고 너도 당신도, 하물며 나까지도 나에게 총을 겨눠 장전중인 상황이라고 느꼈던 때였을 것이다. 한 발자국만 뒤로 더 디디면 그대로 바다로 빠져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던 절망의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대부분의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눈에 씐 콩깍지는 겹겹이었고 생각의 껍데기는 오렌지 껍질보다 더 두꺼웠다. 혼자서는 벗겨내기가 힘들어 고민이 많았다. 칼을 잘 쓰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물에 불려 살살 녹여보면 어떨까. 결론은 아무리 명의라도 생각을 단번에 벗겨내는 왕도를 부릴 수는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거였다. 시간에 기대어 생각 껍데기를 벗겨냈다. 가을 낙엽보다 더 쌓여서 바로 앞이 보이지가 않았다. 까도 까도 나오는 게 양파껍질과도 같은 매력이었어야 하는데, 나는 이 사실이 진실로 안타까웠다. 생각의 껍데기는 보호 차원에서 한두 겹이면 충분할 것 같다. 그럼 알게 되겠지.
'이 정도면 나도 고소하고 맛있는 인생을 살고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