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남겨지는 것
멀어진 관계를 인정하는 방법
기억에 남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걸까.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중요한 걸까. 인간관계라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한 피할 수도 없고 피해지지도 않는 기묘한 것이다. 직장생활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친분을 도모하는 동아리 모임이나 문화활동을 위한 정기모임에서 까지도 정서적 공감과 소통으로 인한 마음 달램은 꼭 필요한 것이 되었다. 만약 이 모든 감정을 제한하고 강압이 있다면 그 모임은 아마 얼마 못가 해체될 것이다. 인간관계, 내 마음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것은 그래서 참 귀한 일이다.
20대 때 알게 된 그녀는 나와 동갑이었고 성향도 생각도 비슷한 사람이었다. 취향도 비슷해 말이 잘 통했고 적재적소 알맞은 말을 할 줄도 아는 현명한 인물이어서 친구였음에도 보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경인아, 나 월급날이야, 이제 돈 모을 만큼 모았고 이제부터 나는 즐기려고. 오늘 같이 저녁 먹자. 맛있는 피자집 알아놨어!"
버스에 앉아 음악을 듣던 중 받게 된 그녀의 문자는 나를 빙긋이 웃게 했다. 아, 모처럼 만나 수다 떨고 맛있는 거 많이 먹어야지. 오랜만에 갖게 될 친구와의 만남은 기대되고 좋았다. 하지만 곧 마음 한편엔 부러움이라는 감정과 조바심이라는 감정이 서로 엉켜 솜뭉치처럼 뭉쳐지기 시작했다. 부러움의 근거는 이제 맘껏 즐길 수 있겠다던, 그녀 스스로 인생을 참 잘 책임지며 살았구나 싶은 사실에 기인한 것이었고 조바심의 근거는 나와 달리 안정된 삶에 기반한 탄탄한 인생길을 살던 그녀의 현재에 기인했던 것이었다. 벌써 저만큼 앞서가고 나만 이곳에 있어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스스로가 너무 무능력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친구는 한 번도 빗나감 없이 한 길을 쭉 올곧게 가는 사람이었다. 인생에서 커다란 실패도 없었고 허황된 꿈을 꾸며 이뤄지지 않을 꿈을 꾸지도 않았다.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실현 가능한 비전을 계획하며 누가 봐도 굉장히 현실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나는 글을 쓰겠다는 명목 하에 현실에 만족하기보다는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 같았다. 일은 무미건조했고 내가 사는 일상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 자만하면서 항상 어딘가로 도피하기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행복은 항상 그녀의 옆에 환하게 웃으며 있었지만 나의 행복은 항상 저 멀리 손에 닿지 않는 어딘가에 있어 나를 외롭고 불행하게 만들었다. 친구는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정말로 자랑스러워했다. 자신에게 부족한 감수성과 서정을 높이 평가해 그런 내가 아주 부럽다고 했다. 나는 넘쳐흘러 감당할 수가 없었던 내 감정의 무게를 누군가에게 팔아넘기고 싶었었는데 말이다. 두 발이 땅에 닿지 못하고 언제나 붕 떠서 불안하기 짝이 없는 나의 현실감 결핍을 몹시 원망하며 살았던 나를 친구는 알지 못했다.
그런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나는 축하하는 마음보다 무언가를 잃었다는 느낌이 더 컸다. 꼭 영혼의 단짝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느낌 같았다. 아마도 그건 나의 결핍을 충분히 채워주던 따뜻한 사람의 부재 탓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분명한 건 난 나로서 단단히 버티고 섰던 것이 아닌 그녀의 어깨에 기대 한쪽 다리로 비스듬히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서있던 친구는 발걸음을 떼어내 어디를 가더라도 홀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부재와 상관이 없이 , 그것이 나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나의 자리에 두고 자신의 길을 오롯이 간다고 하더라도 괜찮다 믿었을 것이다. 그만큼 친구는 단단했고 건강했다. 20대의 나는 어른이지만 어른이 아닌 어른 아이에 불과했다.
관계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그 자리엔 커다란 구멍이 생기거나 땅이 파인다. 때로는 모든 게 허물어져 폐허처럼 망가져 버리고 만다. 시간을 수없이 나누고 서로의 일상에 수없이 개입을 하여 유기체처럼 스며든다고 하더라도 잠시 잠깐 마음이 삐딱해지면 그 틈새로 금이 생기는 거다. 틈새는 다시 좁혀질 수 있지만 흔적은 사라지지 않아 가만히 바로 보고 있으면 떠올리게 된다. '아, 그랬던 적이 있었는데, 잘못 만지면 부서지겠지?'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밀물처럼 다시 채워진다. 그 사이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고 그러면서 어떤 날의 실수를 만회할만한 좋은 사람을 알아 깊은 우정을 넘어 전쟁 중의 전우처럼 끈끈한 사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지나간 관계는 지나가도록 두는 것이 옳다. 굳이 잡아 애써 쥐면 내 손만 움푹 파여 상처가 난다. 벌어진 관계가 아프긴 하더라도 아픈 만큼 의미를 허투루 두지는 않게 된다. 그렇게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다가오는 많은 기회와 관계 속에서 은은히 서로를 북돋워줄 인간관계를 새롭게 만드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