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내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사랑해야 할 것들
곧 잘 어떤 말로 시작을 하는 게 좋을지 망설여질 때가 있다. 몇 가지의 말들이 머릿속을 떠다니지만 여백을 기웃거리기만 할 뿐 여백에 내려앉지 못하는 말들이 더 많은 까닭은 지켜내지 못하고 버려지는 말들이 더 많은 것에 부끄러움을 느껴서 인지도 모른다.
온갖 좋은 이야기들을 들어도 새기지 않으면, 실천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힘을 잃은 말이 되어 소멸이 된다. 온갖 아름다운 말들에, 나를 위해 쏟아지는 별보다 많은 말들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결국 나뿐이다. 어떤 날은 말과 함께 이어지는 생각이 깊고 어두운 터널에 들어간 것 같이 새까만 색을 입고 자꾸만 부정으로 몰고 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상황의 영향일 수도, 사람에 의한 것일 수도, 너무 오랫동안 몸에 굳어진 습관 탓일 수도 있지만 벗어날지 머무를지 선택을 하는 것은 언제나 나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선택의 주도권이 온전히 나에게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티 내고 싶지 않은 나의 약한 모습과 약점들은 감추려 할수록 불쑥불쑥 튀어나와 사람을 당황스럽게 한다. 빗장을 거둬낸 당신과 내가 허물을 벗고 친구가 되려 할 때도, 나의 능력을 힘껏 발휘해 닿을 것 같지 않던 꿈에 도달하는 순간에도, 내 일부를 잘라 나눠주어도 기꺼이 그러마 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랑을 할 때에도. 지켜내고 싶은 간절함이 강렬할수록 티 내고 싶지 않은 내 안의 빈약한 감정과 상처들은 강도 높은 지진을 만난 것 같이 온통 흔들려 버리고 만다. 그럴 때,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악으로 깡으로 다시 시작해 보자 외치는 사람보다 바람에 꺾인 갈대처럼 푹푹 쓰러져 좌절을 하고 티 내고 싶지 않아 악물고 버텼던 상처들이 아파 우는 사람을 나는 더 많이 봐왔다. 나 역시 잘 못하지만 그럴 땐 그냥 사람이란 원래 그런 거지 하며 수용하는 편이 낫다. 티 내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해도 행복한 데는 별 문제가 없다. 행복의 정의에 나를 끼워 맞추려다 보면 그 프레임에 적합하지 못했을 때 오는 불안과 슬픔은 엄청나다. 행복을 좇아서 행복하게 살려다 보니 진짜 행복한지가 너무 오래된 나를 발견한다.
티 내지 않으려 두꺼운 화장으로 얼굴 가려도 한낮의 햇살 아래 서면 낱낱이 공개되는 민낯은 어쩔 수가 없다. 티 나는 모든 구석을 업신 여기는 사람이 부끄러운 것이지 나의 허물은 내 성숙의 상징이므로 사랑해줘야 한다. 내가 눈치를 보는 건 당신을 배려하기 위함이고 내가 예민한 건 너를 더 섬세히 사랑하기 위해서다. 내가 가지고 있어 티 내고 싶지 않던 불편한 구석들은 잘 다뤄지지 못해 미숙할 뿐 잠재적 성장의 시작점이니 꽤 근사한 것이다. 티 내고 싶지 않아서 태연한 척하다가 티 내고 싶지 않은데 티가 나게 되면 나만 이런 게 아니야, 난 잘하고 있어, 소란하게 연민을 가져보는 게 좋다. 흔들대면 흔들리면 되는 것이지 힘도 못 써보고 부러지면 붙이는 게 더 고생이다. 나는 여전히 나다. 티가 나든 나지 않든 늘 최선을 다하며 사는, 우울한 행복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