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연
지금도 그렇듯 그때도 꿈은 많았다. 오히려 그때는 좀 더 저돌적이고 씩씩하게 꿈이란 걸 생각했던 것 같다. 직업군도 다양해서 카페도 창업해보고 싶었고 마음이 잘 맞는다고 믿었던, 하지만 결과적으론 그렇지 못했던, 아는 동생과도 극단을 만들어 보자며 대단한 포부를 보였다.
내가 그를 사랑한 이유엔, 내 꿈을 응원해주고 힘을 실어주고, 시들시들한 꽃에게 물과 햇빛을 주는 사람처럼 내가 품은 꿈을 향한 믿음을 굳건히 지켜준 이유도 있었다. 사람을 사랑하는데 이유라고 하니 아주 속물처럼 느껴져서 내가 좀 별로인 인간처럼은 생각되지만 사람을 사랑하는데 아주 조건적인 이유가 분명히 있는 거라 생각하는 편이니까. 나에게 부족한 것을 타박하지 않고 면박 주지 않고 넌 이제 시작이라며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응원해주던 말 자체는 아주 진부한 것이 될 수 있겠지만 그 말을 하는 태도와 진실된 힘은 아무리 들어도 전혀 진부할 수가 없는 거였다.
카페를 창업해보자며 우스갯소리보다 조금 더 진지하게 의논을 했을 때 나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그와 함께 미래를 그려갈 수도 있을 것이란 전제하였다. 매일 카페 이름을 공모하며 인테리어를 구상했다. 우리에게 종잣돈이 얼마나 있지? 우리에게 필요한 자금은 얼마나 될까? 하는 아주 현실적인 부분의 질문은 쏙 빼놓고 말이다. 그런 설렘이 좋았고 흥분된 모험의 세상이 재밌었던 건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하얀 지붕, 나비 한 마리, 카페 이름으로 어때?"
"음...... 나쁘진 않은데 그보다 나비 한 마리 날아들 때... 이건 어때?"
"너무 길지 않아?"
이런 대화를 하는 날이면 우리는 이미 카페 공동 창업주로 CEO가 된 듯 우쭐했었다. 어쩌면 나만 그랬던 건지도 모르고. 이름이 길고 뭐고 이런 대화 모두 깊은 추억이 될
것을 알았다면 나는 좀 더 그의 말을 잘 들어줄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있는데 말이다. 먼 훗날 우리가 다시 재회라는 걸 했을 때 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거 기억 나? 카페 이름 짓던 거?
"기억나지 그럼."
"하얀 지붕, 나비 한 마리"
"나비 한 마리 날아들 때"
"난 그때 그랬던 것 같아, 내가 하고 싶은 카페였는데 왜 오빠가 이름을 막 바꾸려 드냐고."
"그래서 그랬지, 또 또 욱한다."
그래서 미안했다. 사소하게 욱하고 사소하게 감동받고 사소하게 풀어지고 대부분 사소하게 사소하게. 진지하지 않아도 될 것을 굳이 진지하게 몰고 가면서 결국 사소한 한마디로 거의 대부분의 것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 것처럼 할 굴 거였으면서 감정적으로 그를 꽤나 힘들게 만들었던 건지도 모르겠구나 싶었다. 별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모두 좋아져 라는 위로도 없이. 나와의 관계 말고도 무거운 짐 진 흔적이 많았던 그를 나는 별로 응원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공지영의 소설 <나는 언제나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책을 그가 선물해주고 싶다고 했다. 당장 사러 가면 바로 볼 수 있었던 것에 반해 그의 책 선물은 적어도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거 사지 마, 내가 선물해 주면 안 돼? ㅠ ㅠ" 라며 문자를 보내온 그에게 이미 감동을 받아버린 후였다. 그 책을 곧바로 수령하지 못하고 빙빙 돌아 아주 어렵게 받게 됐던 이유는 집에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우편이 자꾸 반송이 됐기 때문이었다. 책도 등기가 가능했던 걸까. 그때 당시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우체국 직원분과 며칠을 통화해 겨우 받을 수가 있었다. 책 잘 받았다는 , 당신의 손편지 글씨가 새삼 달라 보이더란 말을 그에게 전했을 때 밝게 웃으며 쑥스러워하던 그를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그는 꿈의 가치와 나의 열정을 높이 평가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그건 나중 문제고 꿈을 꾸고 노력한다는 자체를 중요시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늘 최선을 다하는 그가 나는 좋았다. 자신의 일을 힘들어는 하면서도 좋아했던 그가 나는 좋았다.
열 마디 응원을 해줄 때 다섯 마디도 응원해주지 못했던 철딱서니 없는 연인이었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나를 열심히 응원해주던 당신을 내가 많이 사랑했었다. 아직 희미하게 기억하는 그의 연락처를 되뇌며 잘 지내지 묻는 것은 나의 욕심이고 뒤늦게나마 그를 향해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조용히 응원을 하고 싶은 나는, 사랑했었다 뒤늦은 고백을 하는 사람처럼 마음이 짠해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