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연
삶이 열려 있음을 아는 것, 다음 산을 넘으면, 다음 골목으로 접어들면, 아직 알지 못하는 지평이 놓여 있으리라는 기대는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헬무트 두비엘, 시간이 멈춘 자리에서 中>
그를 알았을 무렵, 나를 감싸 흐르던 주파수는 썩 좋지 않았다. 감정 기복이 널을 뛰듯 했고 길을 걷고 있어도 머릿속은 어지럼증이 수시로 찾아왔고 심장박동은 일정치 않아 불편했다. 생각해보니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 같다. 주파수가 비슷한 사람을 끌어당긴 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를 만났던 건 신의 배려였던 걸까. 멀리서 본 그는 시니컬함을 온몸에 감고 있는 사람 같았다. 시큰둥한 게 아니라 정말 시니컬해 보였다. 아, 역시 같은 주파수가 끌린다는 게 사실인가 봐. 했던 것이 무색하게 가까이서 본 그는 조용히 열정적이고 차분히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아마 나는 그가 무조건적인 긍정을 남발하는 사람이었다면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평을 늘어놓기 전 최선을 다하고 여유가 없어도 차근차근 공간을 만들던 그는 정말로 멋진 사람이었다. 내가 본 내 앞은 매일이 낭떠러지 같았는데 그가 바라본 내 앞날은 매일이 도약을 기다리는 성실한 날들의 반복이었다고 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그는 그 말을 잊을만하면 내게 읊어주었다. 넋 놓고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이 나였다면 밀어붙여 겁이라도 줬을 텐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사람이 나 같아서 , 이젠 좀 기다려도 보라고 조언했다. 나의 한결같던 부정이 그의 단호한 긍정에 조금씩 스며들어갔다.
그를 만나고, 나는 기다림이 좋은 거란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