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연
흘러가는 것이 무섭다 느낀 적이 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나 관계가 흘러가는 것이나 마음이 흘러가는 것들이 그랬다. 그가 내 일상에 숨처럼 붙어 있을 땐 다시 그를 만날 시간을 기다리면서 나의 일상을 숨 가쁘게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피로감과 긴장감이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는 이불처럼 나를 놔주지 않았고 나는 그 상태로 출근을 했다. 서글픔과 서러움이 곧 잘 넘치는 무리 속에서 나는 또 용감하고 씩씩하게 내 자리를 지키며 직장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 엄청난 하루를 보내고 난 후에야 그와의 달콤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설렌다기보다는 무서웠다. 시간이 흘러야 행복한 시간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당장 행복한 시간에만 머물러 있고 싶었다.
내 마음과는 무관하고, 내 감정엔 아랑곳 않고, 내가 맡은 바 소임을 다 하면서 살았던 결과는 그와의 이별이었다. 내 열정이 지나쳐 그와 이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열심히 내 맡은 바 충실하며 꾀부리지 않고 살아왔어도 내가 갖고 싶어서 노력했던 어떤 부분은 배신하는 것처럼 나를 떠났다. 삶을 열심히 살아오면 내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떤 부분만큼은 내게 선물처럼 상을 줄 줄 알았다. 전혀 다른 쪽에서 팡파르가 터지며 축복하는 소리가 들려올지는 몰라도 진정 원하는 것이 환호성 치며 찾아오는 일은 사실 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뤄진 그 무엇인가에 대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기뻐했어야 했다.
이별 후에도 나는 잘 지냈다. 그래야 했고 그러고 싶었다. 이별도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었다. 내 탓이 없지 않았고 이별은 내게만 아픈 게 아니었다. 어차피 마음은 꼼짝없이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슬픔은 감추고 한숨을 숨처럼 뱉었다.
시간이 흘러 생각을 했다. 그와 나의 낮과 밤은 매일 그렇게 서로를 찾아올 텐데, 그렇다면 뭐 어쩌겠나. 매일 의미를 주고 미소를 지어 살아야지. 난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며 이별을 보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