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하려고 해

by 새벽뜰
그림. 이연



타인을 기쁘게 하려는 행위는 자칫 비굴해 보일 수 있다. 좋은 의도이든 불순한 의도이든. 후자 쪽이라면 비굴해 보인다고 하여 억울해할 필요는 없겠지만 순수한 마음에서 기쁨을 주려고 한 사람에게 비굴하다 말하는 건 언어폭력 까지도 될 수가 있는 것 아닌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비굴해지지 않으려 애썼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 마음을 잘 추슬렀다. 하지만 상대에게 마음이 기울어질수록 그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고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싶었다. 딴에는 비굴해져도 담백하게 비굴해지자 하면서 기름기를 빼고 깔끔하게 행동한다고 했었지만 그래도 비굴한 건 비굴한 거였다. 자신을 속이지는 못하는 거고 그럴땐 화장실 들어갔다 뒤처리 안 하고 나온 사람처럼 마음이 찝찝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상대를 좋아해 기쁨을 주려 했다기보다 비위를 맞춰주려 비굴해진 것밖에 안됐다.


내가 좋아했던, 그래서 여전히 좋은 추억으로 남아준 그에게까지 비굴해지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을 했던 적은 없었다. 나는 그보다 더 못난 생각을 갖고 그를 대한 것은 아니었나 종종 자신을 성찰했다. 약간의 노력을 극대화시켜 최대치의 노력이라고 떼를 썼다.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비굴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게 비굴한 것인가 라는 의문을 그때는 왜 갖지 못했던가.


내가 추억하는 그는 나를 기쁘게도 해주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내게 기쁨 그 자체인 사람이었다. 얼굴을 보면 하루의 고단함을 위로받았고 별 것 아닌 이야기에도 세상에서 가장 웃긴 얘기를 들은 사람처럼 즐거웠다. 사랑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사람의 영향력은 아주 막강하니까. 목소리 만으로도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고 하니까. 잘해준 기억보다 못해줬던 기억이 더 많은 게 왜 꼭 내 비굴함을 감추기 위한 변명처럼 느껴지는 걸까. 사회에서 만난 가식적인 부류의 사람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참 기쁘게 해 주었던 그에게선 비굴함 따윈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내 시간은 아랑곳 않고 추억 속에서 계속 흘러가고 있다. 추억이 고여서 썩지 않게 하려고 그리워한다. 기쁨 주는 일을 비굴함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함을 반성하면서 나는 방울방울 이슬 같은 눈물은 감춰두고 나의 추억을 그리워하려고 한다. 그리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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