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연
그와 연락이 다시 닿고 우리는 각자 어느 지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놀이동산에 가 가장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든 지 그동안 먹어 보지 못한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보든지. 어쨌든 헤어져 있는 동안 떼를 놓쳐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자 했었다.
우리의 중간지점은 대구였다. 아마도 가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설렘 반 긴장 반 소개팅으로 만나는 사람, 얼굴도 모르고 지인을 사이에 두고 연결된 사람처럼 마음이 들떴다. 아, 난 소개팅을 할 때 설레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새로운 인연을 맺는다는 자체가 흥미로웠으니까. 비슷한 시간에 도착을 했던 것 같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만나기로 했던 장소로 이동을 했다. 모퉁이를 돌아 전화를 받으며 걸어오는 그를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았다. 어쩜 그렇게도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는지. 하나도 변하지 않고 헤어졌던 날 모습 그대로인 상대방 덕분이었을까. 재회라는 제목으로 만났어도 여전히 이어진 사람처럼 마음은 똑같이 가까워져 있었다.
"잘 찾아왔네?"
"어, 찾기 쉽던데?"
목소리도, 표정도, 말투도 모든 게 내 기억 속 그대로 남아 있어 준 그에게 고마웠다. 함께 밥을 먹으러 들어갔던 어느 골목길엔 사람이 많았다. 둘 다 잘 알지 못하는 낯선 곳이 되다 보니 무작정 감을 믿고 들어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결국 음식점이 모여있는 거리를 찾기 위해 타인에게 길을 물었고 스스럼없이 도움을 청할 줄 아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마음이 좋았다. 대구에서 유명한 곱창과 막창을 재회한 사람과 먹었다. 아주 편안한 자세로 앉아 맛있게 구워 먹었다. 잘 보여야 하고 있는 척 과시해야 하고 이런 표현 같은 건 처음부터 우리 사이에 어울리지 않았다. 되려 곱창을 굽다 튄 기름에 서로의 살갗 상태는 괜찮은가 걱정해주는 사이일 뿐이었다.
상대방이 나에게 좋은 사람인지 아는 방법은 간단하다. 같이 있으면 시간이란 놈이 그렇게 잘 간다. 바퀴가 수십 개 달린 기차처럼 무슨 놈의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 해가 뜨는 시간과 해가 기울어지는 시간에 비례한 감정이 그와 나 사이에 흘렀다. 만남은 짧고 헤어짐은 길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끝을 바라보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우리는 다시 서로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바쁜 걸음 치며 오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입으로 뱉은 말은 안녕이지만 눈으로는 다 들리지도 않는 , 수없이 많은 말들이 뒤엉켜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두 마디 정도는 헤아려볼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헤아려서 뭐 하겠나. 아쉬움은 아쉬움으로만 채우면 될 뿐 또 한 번 먼 이별을 할 필요는 없었다.
몇 년 후, 일이 있어 가게 된 대구에서 그와 함께 거닐고 밥을 먹었던 그 장소, 거기는 어디였을까 궁금해졌다. 내가 찾지 못하는 것일 뿐 그 자리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을 텐데 난 보고도 찾지 못하는 눈먼 자가 된 것 같았다. 그 거리만 쏙 빼놓고 나머지 모두는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그날 나는 추억을 잃었다. 조금 쓸쓸하긴 해도 슬프지는 않았다. 천만 중에 다행이지 않나. 내 기억 속엔 진주알처럼 반짝거리는 그와 내가 그 모습 그대로 살아 웃고 있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