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연
분명한 나의 것은 많지 않았다. 물질적인 건 나의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마음을 놓고 오래 볼 수 있었지만 사람이라든지 보이지 않는 감정이라든지, 존재는 하지만 손엔 잡히지 않는 사랑 같은 건 잠깐 머물다 가는 손님처럼 아쉬움을 남겼다. 나의 것을 놓친 기분이 좋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주저앉아 널브러져 시간을 보내는 건 옳은 태도가 아니었다. 예외가 없다. 사랑도, 거기에서 파생되어 어디까지 뻗어나가 자란 감정들 모두 내가 저질러 버린 욕구의 일부분이었다. 그렇게 사랑을 하면 즐거움도 내 몫이고 설렘도 내 몫이다. 그 말을 바꿔서 말하면 이별한 후 남게 되는 모든 감정 찌꺼기마저도 나의 것으로 남게 되니 사랑할 때 얻은 좋은 감정의 대가를 치러내듯 헤어지고 남은 감정 찌꺼기도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오색찬란하여 세상이 눈부신 건 사랑이라는 감정이 두 눈을 무지갯빛으로 감싸고 있기 때문이었고 선명하고 또렷한 세상이 먹구름 낀 하늘처럼 회색빛이 될 때는 무지갯빛이 남겨놓은 감정 찌꺼기가 눈을 덮었기 때문이었다. 회색이 낭만적으로 느껴져서 감성이라는 말로 괜찮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기까지는 각자의 시간이란 게 필요하다. 나의 것을 잃고 괜찮다는 말을 하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각자의 노력과 이별을 소화하는 능력에 따라 차이가 난다. 사랑을 많이 하면 오래 걸리고 사랑을 적게 하면 짧아지는, 그런 간단하고 단순한 문제가 아닌 거다.
시간을 잘 보내야 하는 이유는 성장을 할 것인가 퇴보를 할 것인가 하는 철학적인 부분도 있고 내가 한 사람으로서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앞으로 찾아 올 새로운 사랑에 더 성숙하게 대처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레벨업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 것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아니었던 그것을 잘 놓아주어야 "괜찮아"라고 말할 수가 있다. 얼굴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단아한 아름다움으로 색깔이 물들어 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괜찮은가. 내 마음을 꺼내 이렇게 내보이고 있는 지금 더 이상 어떻게 더 괜찮아질 수가 있단 말인지. 고마웠다. 잘 지내시라 말하는 지금. 무엇으로 더 괜찮음을 표현할 수가 있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