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뜰 Sep 05. 2024

문득 생각이 나서.

feat 4월 이야기

 고장이 난 기계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의지가 있다고 해도 그건 의지만으로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다. 게다가 기계엔 생명이란 것도 없으니.


 그 시절에 나는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고 만나고 싶으면 약속을 잡아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실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늘 불안했고 조바심이 마음을 괴롭혔다.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을 숨을 쉬는 일만큼이나 자주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  환경에도 변화가 찾아들기 시작한다는 어느 나이 언저리가 되면  안개처럼 가려져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비 내린 하늘처럼 너무 맑게  보이고는 하는데 그건 마치 전혀 다른 세상을 오가는 느낌이었다.




네이버 무비


 새것과 견주어도 아무 손색이 없을 것 같던 그 시절. 나는 꽤 많이 고장 나있었다. 나를 챙긴다는 것이 뭔지도 몰랐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일을 책으로 배운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누구 못지않게 많은 경험을 했고 나는 많이 아팠다고. 내가 겪었던 것들에 지나친 중요성을 부여했던 결과는 그냥 공 든 탑이 무너져버린 듯 한갓진 감성일 뿐이었단 것이다.


 너무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의 상처들. 너무 소중하게 여겨왔던 그 시절의 추억과 사람들. 그냥 어느 정도까지만 의미를 주었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유쾌했을 것이다. 내게만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어느 누구나 갖고 있는 아주 가볍고 즐거운 비밀 같은 것으로 말이다.


문득 생각이 나는 밤.

문득 생각이 나서.



매거진의 이전글 영혼이 하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