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울림을 얻는다.
머리, 꽁지 다 자르고 결론만 말하자면.
그것은 ‘깨달음’이었다.
나의 남편은 두괄식 설명을 좋아한다.
구구절절 결론이 마지막에 오는 나와는 달리,
선 본론 후 서론을 지향하는 사람 중 하나다.
남편 회사 동료들이 둘째 생각이 없냐는 말을,
그렇게 많이들 물어본다고 했다.
남편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남의 가족계획에 참 관심도 많으시다.
왜 이렇게 오지랖일까 싶은 생각 말이다.
나는 웃으며 ‘내 핑계 대’라고 말했다.
남편은 무슨 핑계는 핑계~
생각이 없으니까 안 낳겠다는 건데.
라는 말로 나를 대변하듯 다시 말했다.
내 머리가 띵-했던 순간은 남편의 그다음 말이었다.
너도 너지만 나부터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어릴 때 진짜 가난했었잖아. 난 우리 아들한테 가난 물려주기 싫다. 풍요롭게 여유롭게 그렇게 키우고 싶어.
남편과 난 어릴 때 참 가난하게 자랐다.
부모님이 돈으로 허덕이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면서.
그 와중에도 먹고 싶은 건 어떻게 해서든 사다 주셨던 것도.
가난이 어린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남편의 서사도 눈물 없이 들을 수 없고.
나의 서사 역시 눈물 없인 들을 수가 없다.
우리는 그 민낯을 서로에게 드러내고 결혼이란 걸 했다.
딱 두 가지 사실이었다.
괜찮은 줄 알았던 남편도 가난에 대한 상처가 컸다는 사실.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서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가난을 물려주기 싫은 건 몹시 명백하고 당연한 것이니까.
‘나도 알아, 나는 뭐 안 가난 했었어?’
선뜻 동의는 했었지만.
그 말을 직접 듣는 것과 ‘그렇겠지, 당연하지’ 하며
남편의 마음을 짐작해 보는 느낌은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그의 속내를 꽤나 간파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난 그가 아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할 줄은 미처 몰랐다.
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란 말인가!
아이가 자라는 환경과 상황은 우리때완 완전 다르다!
그리고 또 하나.
아, 그래. 우리 이만하면 풍족하게 살고 있는 게 맞지? 뜨내기처럼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는 안정적인 우리 집이 있고. 누구에게 손 빌리지 않고 의식주 해결 다 하고 있고. 종종 누군가들에게 한 끼 식사 정도는 사 줄 수 있고 말이야!
난 왜 이 사실들을,
까맣게 잊고 살았을까.
그것은 마치,
마법에 걸려서 제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
동화 속 주인공 같은 느낌과도 비슷했다.
그동안 ‘감사합니다.’라는 말들로 되뇌었던 말들이.
그냥 내뱉었던, 알맹이 쏙 빠진 허상이었음을 알았다.
무척이나 새삼스럽게 감동이 물밀 듯 몰려들었다.
충분한데.
난 뭘 더 바라고 있었던 걸까.
난 그동안 아무것도 내려놓고 있지 못했던 거구나.
매체에, 인간관계에, 입소문들에 정신을 뺏겨서.
나는 내가 가진 그 모든 것들에 의미를 놓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내 일상의 색이 조금 변해 있었다.
로맨틱함이라곤 별로 없는, 대신 유머가 충만한 남편에게.
내가 큰 깨달음을 얻은 새로운 9월의 어느 아침이었다.
유머로 무장한 사람 속엔 묵직한 인생이 새겨져 있나 보다.
내가 바라는 것들이
이뤄지면 좋고 혹여 이뤄지지 않더라도.
추후 더 좋은 것이 올 거란걸 믿으면서.
나는 다만 바라는 것들을 의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