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죽을 끓이는 마음

그리움을 한 솥 끓이고 있다.

by 루담

찐죽을 끓이는 마음

“오늘 같은 날은,
그냥 뭐든 좀 푹푹 끓여야 마음이 놓여.”


비가 쏟아지는데
안방에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심장이 허전해서
나도 모르게 부엌 불을 켰다.

찐죽을 끓인다.
호박이든, 감자든, 있는 걸 다 넣고
참기름 한 방울, 소금 약간.
그리고
그리움 한 국자.

젊을 땐 비 오는 날이면
애들 우산 챙기고, 빨래 걷고,
허둥지둥 하루가 갔는데
지금은 느리게 익히는 찐죽처럼
마음도 천천히 익어간다.

한 숟갈 떠서,
내가 먼저 먹어본다.
뜨겁지도 않은데
눈시울이 먼저 뜨거워진다.

“할애비도 이 맛 좋아했지…”
혼잣말이지만,
그 사람도 듣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이런 날은 괜찮다.
누가 찾아오지 않아도,
젖은 마당이 미끄러워도,
이 찐죽 안에 다 있으니까.

오늘도 나는
그리움을 한 솥 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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