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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는 오늘도 흐르고

나는 오늘도 듣는다.

by 루담

이제는 사람 목소리가
기계 속에서 나오는 게
제일 따뜻할 때도 있다니까…”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괜히 TV보다 라디오를 먼저 켠다.
라디오는 묘하다.
사람이 있는 듯 없는 듯,
혼자 사는 집에 말을 걸어주는 느낌이랄까.

“비 오는 날, 청취자 여러분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그 말에,
나는 괜히 대답도 해본다.
“나는… 그냥 조용히, 듣고 있어요.”

할머니가 있던 시절엔
이런 날이면 꼭 된장찌개 끓이고,
그 옆에 앉아서 서로 말없이 라디오를 들었지.
진행자 목소리에 맞춰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그걸 보고 웃고.

지금은 뭐,
라디오가 그 사람보다 오래 남았네.

음악 한 곡 흘러나오면
젊은 날 어정쩡한 고백 하나,
다신 못 돌아갈 어느 밤도 따라오고.

그냥 그거면 된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이 집에서
목소리 하나가,
기억 하나가
슬며시 문을 열어주는 것.

라디오는 오늘도 흐르고,
나는 오늘도 듣는다.
어디선가 들리는 그 사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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