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앉은 노인의 국물 한 숟갈
지리산 아래,
작은 식당 안 창가 자리엔 늘
같은 자리에 앉는 어르신이 있다.
늘 비가 오는 날이면
혼자 와서 온소바를 시킨다.
그리고는 말없이 창밖을 본다.
젓가락을 들지 않고,
국물도 식은 채로
잠깐, 아니 꽤 오래.
“비 오는 날은, 사람이 말이 없어져.”
주인 아줌마가 그렇게 말했다.
“말을 해봐야,
다 젖어버리는 거 같아서 그랬을까.”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아줌마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곤 한참 있다가 슬쩍 덧붙인다.
“그 양반… 젊을 땐 엄청 수다스러웠거든.”
창밖엔 빗물이 처마 끝에서 똑똑 떨어지고
누군가는 묵묵히 그것만 바라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묻지도 않은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사람은 왜, 늙어갈수록 조용해질까?
그날,
노인은 식지 않은 국물 한 숟갈을
천천히 떠올렸다.
그때 문득
그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가는 걸 봤다.
마치 비 오는 날,
오래된 기억 하나가
불쑥 국물 속에서 올라온 듯했다.
그걸 본 나도
괜히 따라 미소 지었다.
비 오는 날엔,
아무 말 없어도
우린…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