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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하지 못한 말

서랍 속의 진실

by 루담

말을 버리지 못한 사람

어느 날 서랍을 정리하다가 잘 접힌 종이쪽지 하나를 꺼냈다. 펼치면 문장이 될까 봐, 괜히 조심스러웠다. 읽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건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못한 말이었고, 어쩌면 나 자신에게 남긴 미안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말을 지우지 못한 채 살아간다. 다 지난 일이면서도, 그때 하지 못한 한마디가 마음을 붙잡고 있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떠나도 된다고 말해주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늦었고, 미안하다는 말은 끝내 삼켰다.

나는 오늘도 말 한 줄을 꺼내지 못한 채 서랍을 다시 닫았다. 그래도 괜찮다. 버리지 못한 것들 사이에서, 나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오니까.

묵은 말들의 무게

서랍 속 종이쪽지는 시간이 누렇게 물들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여전히 선명하다. 우리는 모두 그런 쪽지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가슴 한편에 접혀 있는 말들을.

때로는 용기가 부족해서, 때로는 시기를 놓쳐서, 때로는 상처받기 싫어서 삼킨 말들이 있다. 그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안에서 조용히 자리 잡는다. 마치 오래된 책갈피처럼, 우리 인생의 특정 페이지를 표시하며.

말하지 못한 것들의 의미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순간들을 생각해본다. 누군가 실수했을 때, 자책하고 있을 때, 그저 따뜻한 위로 한마디면 충분했을 텐데. 하지만 우리는 종종 침묵을 선택한다. 어색함이 두려워서, 혹은 내 위로가 진부하게 들릴까 봐.

"떠나도 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죄책감에 묶여 있을 때, 자유롭게 해주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선물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 말을 아끼다가, 결국 상처만 남기고 헤어지곤 한다.

늦은 사랑, 삼킨 사과

"사랑한다"는 말은 참 이상하다. 느끼는 순간에는 너무 벅차서 말하지 못하고, 정작 말하고 싶을 때는 이미 그 사람이 멀어져 있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 타이밍을 놓치는 것 같다.

"미안하다"는 말은 더욱 어렵다. 자존심이 방해하기도 하고, 사과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을까 하는 회의감도 든다. 하지만 삼켜버린 사과는 우리 안에서 썩어가며, 죄책감이라는 독을 만들어낸다.

서랍 속의 진실

그날 나는 종이쪽지를 다시 서랍에 넣었다. 읽지도 않은 채로. 어쩌면 그 안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아는 것보다, 그것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말들은 단순히 후회나 미련이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말하지 못한 사랑도, 전하지 못한 위로도, 모두 우리 마음의 선량함을 증명한다.

이해라는 선물

버리지 못한 것들 사이에서 나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우리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고,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더욱 깊어진다.

서랍을 닫으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그 종이쪽지를 펼쳐볼 날이 올까. 아니면 영원히 그대로 둘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말들이 나를 만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만들어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말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조금 더 인간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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