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인간] 나는 조선의 자연인이다!

11화 서유구

by 초로의 궁사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나도 언젠가는 다 내려놓고 저렇게 살고 싶다”고 말해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도심의 소음과 끝없는 관계에서 벗어나, 내 손으로 가꾼 텃밭의 채소로 하루를 살아내는 삶. 그것은 현대인의 오래된 로망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조선에도, 이 로망을 말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한 고위 관료가 있었다.
풍석(楓石) 서유구(1764~1845). 그는 오늘날로 치면 장관급에 해당하는 대제학을 지낸 인물이었지만, 화려한 관직보다 산과 들에서 흙을 만지는 삶에 더 진심이었다.


명예보다 값진 흙 묻은 손


정치적 풍파로 관직에서 물러난 그는 전남 임원(林園)으로 내려가 직접 괭이를 들었다.
남들은 “어쩌다 저런 신세가 됐나” 혀를 찼을지 모르지만, 서유구에게 그곳은 실패의 종착지가 아니라 삶의 실험실이었다.
물고기를 잡고, 씨를 뿌리고, 집을 고치는 일상.
그 모든 과정이 그에게는 최고의 공부였다. 책에서 배운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쳐 얻은 지혜였다.
그 결과물이 바로 36년에 걸쳐 집필한 113권의 대작, 《임원경제지》다.
이 책은 단순한 농서가 아니라, 조선판 ‘슬기로운 귀촌 생활 백과사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자연인의 바이블, 《임원경제지》


《임원경제지》를 들여다보면, 오늘날 자연인들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조언들이 가득하다.

“집을 지을 때는 산의 형세를 살펴 바람을 막고 볕이 드는 곳을 택하라.
창문은 지나치게 많지 않게 하여 기운이 흩어지지 않게 하고,
머리는 시원하게, 발은 따뜻하게 하는 것이 장수의 으뜸 비결이다.”
— 〈섬용지 贍用志〉

그는 주거뿐 아니라, 자연 속에서 몸을 돌보는 법에도 밝았다.

“몸이 무겁고 기운이 없을 때는 뽕잎(상엽)을 차로 달여 마셔라.
눈이 밝아지고 머리가 맑아지며, 혈압을 낮추는 데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산길을 걸을 때는 명아주 나무로 만든 가볍고 단단한 ‘청려장’을 짚어 무릎을 보호하라.”
— 〈인제지 仁濟志〉

먹거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700여 가지가 넘는 요리법을 기록하며, 제철 음식이 최고의 보약임을 강조했다.

“술은 맑은 샘물로 빚고, 안주는 제철 나물과 물고기면 족하다.
봄에는 쑥과 달래로 국을 끓이고,
가을에는 산수유를 넣은 약주 한 잔으로 피로를 푼다.
이것이 신선의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정조지 鼎俎志〉


은퇴 후, 우리가 꿈꾸는 제2의 인생


서유구의 삶은 평생을 조직과 가족을 위해 달려온 이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선비란 뒷짐 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줄 아는 사람임을 몸으로 증명했다.
관직에 복귀한 뒤에도 그는 늘 숲에서의 삶을 그리워했다.
그에게 행복이란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늘 텃밭에서 무엇을 거둘지 고민하고,
내일 낚시할 명당을 미리 점찍어 두는 소박한 일상이었다.


오늘날 산속에서 구운 감자 하나에 만족하는 자연인의 모습은, 서유구가 200년 전 꿈꾸었던 삶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거창한 성공보다 나만의 숲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삶.
그것이 서유구가 《임원경제지》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다.


개인의 귀촌 일기처럼 읽히지만, 《임원경제지》는 농업·요리·의학·건축·상업을 아우른 농촌 경제 종합 백과사전으로, 백성의 삶을 개선하려는 실학 정신이 응축된 저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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