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무의공 이순신
지천명의 고개를 넘으며 거울을 본다. 그 속에는 누군가의 아버지, 어느 조직의 구성원, 혹은 수많은 관계 속의 일원으로 불리며 정작 자신의 이름 석 자는 흐릿해진 한 중년이 서 있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인물이 있다. 성웅(聖雄)과 한자음 이름이 똑같았던, 그러나 평생을 그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살아야 했던 한 인물이다.
동명이인이라는 설정은 때로 가혹하다. 아홉 살 위의 이순신이 조선의 바다를 구하는 신화가 되어갈 때, 그는 늘 그 뒤를 따랐다. 사람들은 이순신이 승리했다고 말했지만, 그 찬사의 대부분은 그가 아닌 다른 이순신을 향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닮아 있다. 청년 시절에는 저마다 나만의 신화를 꿈꿨지만, 막상 오십에 마주한 현실은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에 미치지 못해 의기소침해지곤 한다. 내 인생은 왜 저 영웅들처럼 빛나지 못했을까. 그 자책은 대개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이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는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았다. 무의공(武毅公) 이순신. 그는 충무공이 가장 신뢰한 장수였고, 옥포에서 노량에 이르기까지 모든 승리의 현장에 함께 있었다. 충무공이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쓰러졌을 때, 그 비극적인 소식을 끝까지 함구하며 전투를 승리로 마무리한 이 역시 무의공이었다.
그는 일인자가 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이순신’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또 하나의 이순신이 되고자 했다. 지천명이 되어 비로소 깨닫는 인생의 통찰은 분명하다. 비교의 대상은 옆에 서 있는 거목이 아니라, 어제의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영웅의 이름 뒤에 가려져 있었을 뿐, 그가 휘두른 칼날은 똑같이 날카로웠고 그가 지켜낸 바다는 똑같이 푸르렀다.
우리는 끝내 충무공이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곧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
세상은 결국 그를 기억했다. 사후 조정은 그에게 3등 선무공신, 양녕의 6대손인 종친임을 상기하여 '완천부원군'에 봉함과 동시에‘무의(武毅)’라는 시호를 내렸다. 무용이 있으면서도 꿋꿋하고 의연하다는 뜻이다. 충무공의 시호가 국가적 헌신에 대한 헌사라면, 무의공의 시호는 거대한 그늘 아래서도 자기 색깔을 잃지 않은 인간에 대한 존경에 가깝다.
지천명의 우리에게도 필요한 시호는 바로 이 꿋꿋함이다.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때로는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밀려날지라도, 내게 주어진 삶의 현장을 묵묵히 지켜내는 의연함. 그것이 오십이라는 나이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품격이다.
영웅과 같은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영웅을 이기는 일이 아니다. 영웅이 사라진 자리에서도 변함없이 빛나는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무의공이 노량의 연기 속에서 끝까지 함대를 이끌었듯, 우리 역시 우리만의 바다에서 저물지 않는 꿋꿋한 항해를 계속해야 한다.
1998년 대한민국 해군은 그의 공적을 기려 장보고급 잠수함 7번함(SS-068)을 '이순신함' 으로 명명했다.
*충무공의 이름을 딴 것은 DDH-975 문무대왕급 구축함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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