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인간] 안동 김씨 그 전설의 시작

21화 김방경

by 초로의 궁사

​비록 제1차 일본 원정군 총사령관은 아니지만, 고려군의 총책임자로서 본토 상륙을 앞둔 김방경의 마음은 칼빛처럼 차분했다. 삼별초 토벌부터 이어진 출정. 형식은 왕명이었으나 실상은 원나라의 영광을 위해 고려를 채찍질하는 홍다구의 등쌀이었다. 전장의 흥분보다는 처연함이 먼저 장수의 가슴을 스쳤으리라.

안타깝게도 ​1차 원정은 바다에 익숙하지 않은 원나라 병사들의 피로와 폭풍우로 큰 성과 없이 끝났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는 고려군의 분전은 원 황제 쿠빌라이의 귀에까지 닿았다. 이후 성절사 자격으로 원을 오가며 쌓인 것은 황제의 신임만이 아니었다. 원에 기생해 이권을 챙기던 부원세력 홍다구(20화 참조)에게 김방경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눈엣가시였다.

​결국 홍다구는 칼 대신 '조작'을 집어 들었다. 김방경이 충렬왕과 함께 강화도로 들어가 원에 대한 역모를 꾀한다는 거짓 상소였다. 여기에 아버지 홍복원의 죽음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까지 더해져 김방경과 고려 왕실을 향한 집요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당시 김방경의 나이는 예순을 바라보는 고령이었다. 살점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고문이 이어졌다. "충렬왕과 함께 원에 대한 반역을 꾀했다고 한마디만 하면 살려주겠다"는 달콤한 회유. 그러나 그는 의연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충렬왕이 눈물을 흘리며 석방을 애원할 정도로 처참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끝까지 고려를 배신하지 않았다.

​ "신은 군인 출신으로 재상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간과 뇌를 땅바닥에 쏟을지라도[肝腦塗地] 나라에 보답할 수 없는데 어찌 제 몸을 아끼고자 거짓 자복을 함으로써 사직을 저버리겠습니까."
"죽이고 싶다면 어서 죽여라. 나는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다.”
《고려사절요》​

​지성이면 감천이었을까. 소문은 쿠빌라이 칸의 귀에 들어갔고, 평소 김방경의 됨됨이를 아끼던 황제는 직접 사신을 보내 재조사를 명했다. 김방경의 몸에 새겨진 고문의 흔적을 본 사신들은 홍다구의 잔인함에 혀를 내둘렀다. 결국 그는 무죄로 복권되었다.

1381년 2차 일본원정에도 홍다구와 함께 다시 참여하게 되는데 후대의 사관들은 그 당시 기록을 이렇게 남겼다.

김방경ㆍ김주정ㆍ박구ㆍ박지량ㆍ형만호 등이 일본군과 힘껏 싸워 일본 군사의 머리 3백여 급을 베었다. 일본군이 돌진하여 오니 관군이 무너져 홍다구가 말을 타고 달아났는데, 왕만호가 다시 측면에서 공격하여 50여 급을 베니, 일본군이 마침내 물러가고 다구는 겨우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고려사절요》​

밖에서는 군을 통솔한 장수, 들어와선 충직한 재상이었던 김방경은 고려 최고의 영예인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에 봉해졌고, 관직에서 물러난 1298년까지 고려의 암흑기를 지탱한 유일한 기둥이었다.


1300년, 89세에 사망한 김방경은 사후 그 공로로 ‘충렬’이라는 시호를 받아 명문가인 안동 김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임진왜란 진주대첩의 김시민, 독립운동가 김좌진, 김구가 그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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