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더운 여름날
창문을 열고 난간에 몸을 기댄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여름밤공기가 습했다. 내 뒷쪽으로는 그녀가 나를 기다리며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구르고 있을터였지만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약간의 귀찮음과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녀는 담배냄새를 싫어했지만 나는 그녀를 위해 담배를, 3분도 안되는 시간에 잿더미로 변하며 10분도 유지하지 못하는 짧은 안도감을 주는 그 작고 하얀 막대기를 희생하지 못했다. 최대한 빠르게 담배를 피우고 그녀의 옆자리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담배냄새 나잖아!”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잔소리가 날아왔다. 그녀는 담배냄새를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직접 담배를 끊으라는 얘기는 한번도 하지않았다. 나는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 이러면 표정이 안보이는구나.
“애교부리면 내가 봐줄줄 알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묻어났다. 나도 그녀의 품 안에서 씩 웃으며 답했다.
“미안해, 이게 진짜 마지막갑이야.”
이번달만 5번째 마지막갑이기는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진짜 마지막으로 만들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잠시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서로의 체온에 잠겨 고요한 새벽을 즐겼다. 숨을 들이쉴때마다 그녀의 땀냄새와 섬유유연제 냄새가 섞여 내 코를 찔렀다. 필시 그녀가 숨을 쉴때는 담배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가슴 한가운데에서 작게 통통 튀어다니던 죄책감이 순식간에 몸을 부풀렸다.
“잠깐만.”
“어디가는데?”
“나 샤워 한번만 하고 올게.”
침대에서 빠져나가 욕실로 향했다. 샤워라도 해서 담배냄새를 지워야겠다는 심보였다. 여름밤의 습한 공기도 피부에 달라붙어 불쾌감을 유발했다. 욕실로 들어가며 10분전의 나 자신을 자책했다. 그녀와 함께 있을때 만큼은 피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 그 잠시를 못참고 다시 담배를 꺼내물다니. 내 한심한 자제력에 화가 났다. 물 온도를 적절하게 조절하고 티셔츠를 머리위로 걷어올렸다. 내 머리가 셔츠에서 겨우겨우 빠져나왔을때 눈에 들어온건, 이제 막 브래지어를 벗으며 내 앞에서 머리를 귀 뒤로 걷어올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뭐야? 더 누워있지 그랬어. 오늘 피곤했다며?”
“목욕정도는 같이 해 줄수 있어. 내 이런 고귀한 희생에 감사하도록 해.”
“네네,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얼굴 표정이 풀어지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웃음기를 꾹 삼킨채 남은 옷을 다 벗고 수도꼭지 레버를 돌렸다.
10분후, 우리는 욕조에 누워 있었다. 담배냄새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고 욕실안은 입욕제와 샴푸, 바디워시, 그밖의 향기로운 냄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집 욕조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라 그녀가 몸을 물에 담그기 위해서는 내가 익사하기 직전까지 그녀에게 깔려 있어야 했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편한 자세로 누워 있을 수 있도록 꿈틀거리며 자세를 교정하고 있는데, 그녀가 갑자기 내 위에서 한바퀴 빙글 돌았다. 그러고는 내 머리카락을 붙잡고 냄새를 맡았다.
“이거지. 이 냄새야.”
“샴푸냄새?”
“너 담배피고 오면 머리카락에서 담배냄새가 제일 심하게 난단말야. 내가 네 머리 좋아하는 거 알잖아.”
그녀는 평소에 침대에서 내 머리 위에 턱을 올려놓고 자는 것을 좋아했다. 보통 머리 위에 턱 괴는 행동은 남자가 여자한테 하는것 아니냐고 내가 툴툴거리자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고리타분한 남자라는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아무튼, 먼저 나간다?”
그녀는 그렇게 툭 내던지고는 욕조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일어나자 수위가 한번에 내려가며 내 몸 절반이 공기에 노출됐다. 나는 약간의 한기를 느끼며 그녀를 따라 일어섰다.
나는 침대 위에 앉아 여전히 알몸 상태로 이불만을 휘감고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밀려주었다. 그녀의 머리는 꽤나 길고 풍성하다. 머리카락을 말리는데에만 40분이 넘는 시간을 잡아먹을 정도로. 그 윤기나고 매끄러운 머리카락을 흔들며 뜨거운 바람을 쐬여주고 있자 약간의 궁금증이 솟아났다.
“넌 이 머리카락이 얼마나 소중해?”
“응? 갑자기?”
드라이기를 끄고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갑작스런 질문에 그녀는 약간 당황한 듯 보였다. 하지만 금새 이성을 찾고 대답하길,
“글쎄, 거의 5년 가까이 기른거니까… 5년정도분의 애착과 애정은 있지.”
나는 고개를 돌려 달력을 흘끗 바라보았다. 이번달 말이면 우리가 만난지 4년째 되는 날이다. 솔직히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질투심이 아주 조금 마음에 베어들어왔다.
“나는 4년도 안만났으니까 얘보다 덜 소중하겠네?”
머리카락을 한번 들어올렸다 떨어뜨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내 입을 저주했다. 농담처럼 던지려고 한 말이었지만 내 입에서 튀어나온건 약간의 언짢음이 묻어나는, 다시 말해 굉장히 찌질한 말투였다. 그녀가 고개를 획 돌려 나를 째려보았다. 그리고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성큼성큼 부엌으로 걸어가더니 가위를 꺼내들었다.
“아,”
내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는 자신의 머리채를 잡고 힘차게 가위질을 시작했다. 서걱서걱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아름답고 긴 머리채는 그녀의 손에 들려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녀의 머리는 이제 짧고 뭉툭하고 삐죽삐죽한 보기 싫은 머리가 되었다. 다시말해, 그녀는 그 순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웠다.
“대답이 됐어?”
나는 바보처럼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머리카락따위, 너한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나는 침대 머리맡에 던져놓은 담배를 쳐다보며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내 시선을 따라가보고는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괜찮아, 신경쓰지마.”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아직 옷을 입지 않은 그녀의 맨살이 내 얼굴에 닿았다. 그녀는 나를 위해 5년 동안이나 애착을 가지고 길러온 머리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잘라버렸는데, 나는 그까짓 담배 하나를 끊지 못하다니. 부끄러움에 몸이 떨렸다. 그녀도 내 생각을 어렴풋이 짐작했는지 내 등을 토닥거렸다.
“괜찮아,난 네가 지금 여기서 나랑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했는걸. 넌 맨날 자기탓만 하더라. 그러면 내가 화낼수가 없잖아!”
그래놓고 위로받고 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가. 더욱이 나를 괴롭게 한것은,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갈때마다 흡연욕구가 가슴 밑에서부터 끓어오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담배피고 올래?”
그녀가 나에게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창문을 열고 난간에 몸을 기댔다. 담뱃갑에서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죄다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꺼내 점화했다. 나는 잠시 흔들리는 불꽃을 바라보다가 라이터를 창문 너머로 던져버렸다. 라이터는 새벽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뒤이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전부 뱉어버리고 그녀에게로 돌아가 품에 안겼다.
“어? 냄새가 안나네?”
“냄새 안나는 담배거든.”
그렇게 말하고 그녀의 짧아진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내가 단발 좋아한다는 얘기, 했던가?”
“몇번 했었지 아마?”
“근데 오늘에서야 머리를 잘라준거야?”
“나도 큰 희생을 한거니까 좀더 칭찬 해달란말이야.”
그녀가 불평 했다. 나는 그 짧아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입에 입을 맞췄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하는 일에 가장 필요한게 뭔지 알아?”
“용기? 의지?”
“아니, 물론 그런 부수적인 것들도 필요하겠지만.”
여기까지 말하고 다시한번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내가 입을 떼었을때 그녀의 눈가는 촉촉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 곤히 잠든 그녀의 얼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녀가 일어나지 않게 조심조심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젯밤에 하지 않은 설거지를 하고, 아침을 차리고, 엉망이 된 집을 정리하고 있다보니 그녀가 부스스한 머리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다.
“또 하루가 지나갔네.”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녀가 아침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그녀를 깨우지 않았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낳은 모양이었다.
“미안해, 일찍 깨울 걸 그랬나?”
그녀를 끌어안고 토닥거려주었다. 한동안 그녀는 내 품에서 떨어질줄을 몰랐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 며칠이야?”
“3일.”
나도 그녀의 귀에 속삭여 주고는 달력을 바라보았다. 이번달 30일에 빨간 글씨로 큼지막하게 4주년!! 이라고 적힌 날짜가 있고, 그보다 4일정도 앞서 차분한 글씨체로 예정일이라고 적힌 날짜가 있다. 의사가 선고한 날짜.
“너 진짜 이렇게 나랑만 있어도 돼? 버킷리스트 같은거 없어?”
나는 조금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뭐, 몇 개 있긴 했는데.”
“그런데?
“그런 사소한 일 따위, 너한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녀가 풋, 웃음을 터뜨렸다가 다시 울상을 지었다.
“그래도…”
그녀의 짧은 머리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울지말고, 나도 나름 희생을 하고 있는거니까 좀더 칭찬해달란 말이야.”
울음소리에 묻혀 그녀의 대답은 잘 들리지 않았다. 고마워 같기도 했고, 미안해 같기도 했다.
“괜찮아. 사랑해.”
그녀에게 그렇게 속삭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짧았고, 내 담뱃갑은 내용물을 잃은채 바닥에 굴러다녔다. 무더운 8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