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문

용도를 잃은 것들

by 미들

내가 그 ‘문’을 발견한건 헤매기 시작한지 3일 정도 되었을때였다. 식량은 그날로 이미 바닥을 보였고, 물병은 벌써 가벼워져 무게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처음에 안내받았던 길은 이미 놓친지 오래였고, 나는 밤이면 뜨는 별을 보고 그저 동쪽으로 하염없이 걷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그 문이 눈에 들어왔다. 사막 한복판에 서있는 거대하고 차가운, 경외심마저 들게하는 그 문. 흔히 거대한 문을 만들때 쓰는 양쪽으로 열고 닫는 게이트 형식의 문이 아니라 보통의 가정집에서 쓰는, 한쪽에만 경첩이 달린 네모난 문이었다.


사막 한복판에 그렇게 큰 문이 있을리도 없거니와 며칠이나 고생한 끝에 드디어 헛것이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구나싶어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그 문은 내 시야의 한 끄트머리에서 굳건하게 버티고 서있었다. 도저히 환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 문 아래까지 한번 가보기로 했다. 만약 헛것이라면 내가 도달했을때 사라질 것이고, 만에 하나 실제로 존재하는 문이라면 누군가는 그 문에 찾아올 것이다. 그러면 그때 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그리고 그 거대한 문뒤에는 대체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내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문은 생각보다 꽤 멀리 있었다. 멀리서 봤을때는 금방 도착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걸어도 걸어도 문은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나서야 나는 그 문이 얼마나 거대한지 체감할 수 있었다. 거대하다 못해 웅장했다. 그리고 문이 가까워질수록 그 실체가 조금이나마 보였는데, 문은 각종 고철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고물에 가까웠다. 문의 표면은 고르지못하고 뭔가 울퉁불퉁했는데, 조금 더 가까이서 보니 각종 파이프나 스프링, 심지어 자동차 범퍼로 보이는 것 까지 각종 고철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조금더 가까이 가보니 그 문의 실체가 드러났다. 각종 쓰레기들을 뭉쳐 압축해 만든 것 같은 문이었다. 가게의 간판이나 공사장 철판은 물론 심지어 비행기의 날개와 엔진으로 보이는 부분조차 문의 일부였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크고 정신없는 그 문을 바라 보느라 문 밑에 사람이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사람은 자고 있었다. 아무리 젊게 봐줘도 60대로 보이는 그 노인은 문과 마찬가지로 폐타이어를 이용해 만든 의자에 앉아 조용히 자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지나갈 거요?”


말을 걸자 노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굉장히 메마르고 거친 목소리였다. 마치 사막같은.


“문 뒤엔 뭐가 있습니까?”

“뭐가 있을것 같나? 대부분 모래와 바람과 먼지라네. 잘 찾아보면 도마뱀 한마리쯤은 더 찾아낼 수도 있겠지.”


노인이 약간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까의 까칠함은 아무래도 단잠을 깨워서 그런듯 했다.


“주무시는 걸 깨워서 죄송합니다. 실은 제가 길을 잃어서요, 이 거대한 문을 보고 사람이 누구 있지 않을까해서 찾아왔습니다.”


내가 사과하자 노인은 괜찮다고 말했다. 폐타이어 의자 밑에서 물병을 꺼내 나에게 건네주며 조난자가 온것은 오랜만의 일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이 사막에서도 거의 정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서 말이오. 대부분의 조난객은 여기까지 밀려나오기 전에 죽기 마련이거든. 당신은 운이 좋은 편이구려.”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노인은 어디서 꺼내왔는지 모를 바나나를 나에게 던져주었다. 바나나는 샛노랗게 싱싱했다. 나는 놀라 노인에게 물었다.


“아니, 이 바나나는 어디서 나온거죠?”

“이 철문이 주는 선물이라네. 장담컨대 맛있을거야.”


아닌게 아니라 바나나는 정말 맛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방금 냉장고에서 꺼내온 것처럼 차가웠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하신거죠? 어디서 이 바나나를 가져오신건가요?”

“말했잖나, 철문이 주는 선물이라고. 더 먹고 싶으면 내 뒤쪽 오른편에 있는 파이프 구멍에 손을 한번 넣어보시게. 혹시 다른 과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나는 노인이 시키는대로 철문으로 다가갔다. 노인이 말한 파이프는 금새 찾을 수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구멍이 꽤나 컸다. 하지만 내 의구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에서 하루종일 서 있는 철문이다. 아마 태양열을 흠뻑 받아 달구어졌을 이 문은 내 살정도는 금새 잘익은 고기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것이다. 그런 생각에 머뭇거리자 노인이 뒤에서 소리쳤다.

“걱정말고 손을 넣어보구려! 화상보다는 동상을 걱정해야할것이니.”


미심쩍었지만 아까 먹은 차가운 바나나를 생각하며 살이 닿지 않게 조심스럽게 파이프 구멍에 손을 넣었다. 그와중 파이프 벽에 팔이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나는 깜짝 놀라 얼른 팔을 빼냈다. 파이프는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내가 뭐랬나?”


어느새 내 옆까지온 노인이 구멍안에 손을 넣고 사과를 한 알 꺼내 한입 물었다.


“사과는 오랜만이군. 요즘 영 물렁물렁한것만 줘서 좀 아삭거리는걸 원했는데 말이지. 당신이 왔다고 문이 신경 좀 쓰는구려.”

“어떻게 하신거죠? 이 밑으로 전선이라도 연결되어 있는건가요? 냉장고같이?”


내가 질문하자 노인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이곳에는 이 문과 나밖에 없네. 정 의심되면 땅이라도 파보시던지. 아무것도 찾지 못할테지만.”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노인에게 문을 한바퀴만 돌아보아도 되냐고 물었다. 노인은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에게 한가지를 일러주었다.


“돌아가는 건 상관없지만 문을 열고 지나가고 싶을땐 꼭 나에게 얘기하게. 워낙 장난기가 심해 깜짝 놀라게 할지도 모르거든.”


노인은 그런 말을 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 문의 비밀을 밝혀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거대한 문을 따라 돌아가기 시작했다. 문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길었고, 또 얇았다. 엄청난 높이와 너비와는 상이되게 문의 두께는 채 3미터도 안되어 보였다. 문 뒤쪽은 앞쪽과 비슷했다. 그저 수많은 고철더미들만 보일뿐 그 밖에 특별한 기계장치나 전선들은 보이지 않았다. 문은 하루종일 뙤약볕 밑에 서있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정도로 서늘했다. 문밑을 좀 파보았지만 문은 땅속으로도 깊게 연결된듯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고 노인에게로 돌아갔다.


“이 문은 대체 뭡니까? 어디로 통하는 문이죠?”


내 질문에 노인은 헛웃음을 지었다.


“어디로 통하는가라… 나도 잘 모르네.”


노인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확실한건 자네같은 조난객들을 위한 등대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지. 자네도 멀리서 이 문을 보고 찾아오지 않았나?”

“그렇습니다만… 이 사막에 이렇게 거대한 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듣도보도 못했습니다. 이 런 곳에 이렇게 큰 문을 만드려면 꽤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전 왜 이런 문의 존재를 몰랐죠?”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네. 스스로 만들어진것이라면 몰라도.”


그 말을 하며 노인은 물을 다 마셔버리고는 빈 물통을 문을 향해 던졌다. 물통은 금속음과 함께 튕겨져 나올것이라는 내 예상을 깨고 문에 자석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나는 할말을 찾지 못한채 자연스럽게 문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 물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물통은 마치 원래 이곳이 자신의 자리였던것마냥 그자리에 그냥 붙어있을 뿐이었다.


“내가 이곳에 오게 된것은..어디보자, 이제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군. 내가 살던 도시에서는 늘어만 가는 쓰레기들을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했지. 쓰레기 매립장은 포화 상태가 되어갔고, 그 모든 쓰레기들을 처리할만한 비용은 어디서도 나오지 않았거든. 사람들은 쓰레기 처리를 위한 세금 인상에도 반대했고, 모여서 어서 이 쓰레기들을 처리하라는 시위를 벌였지. 참 웃기는 일이야.”

“제가 맞춰보죠. 아마 이 일에 흥미를 보인 한 예술가가 자신이 쓰레기를 처리해주겠다고 나섰고, 쓰레기들을 모아 이렇게 거대한 문을 사막 한복판에 만들어 놓고는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였겠죠?”

“비슷했네.”


노인이 말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예술가는 아니었네. 도시의 공무원들은 고심끝에 방법을 찾아냈지. 우리에게 있는건 넓디 넓은 모래투성이의 사막이 아니겠는가. 그 사막에 묻어버리면 모든 고민이 해결된다고 믿었지. 그래서 실행했다네. 그리고 그 난잡하고 지저분한 쓰레기 매립의 책임자로 날 임명했지. 난 비행기에 쓰레기더미를 실은채로 이 사막을 향해 날아왔다네. 그리고 일이 터졌지.”

“일이라뇨?”


내가 궁금증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비행기가 추락했지.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른다네. 사실 항공사에서도 수명이 다한 비행기를 처리하고 싶어했거든. 그래서 퇴역 직전의 낡은 비행기의 마지막 임무로 쓰레기를 나르는 임무를 주었고, 그 비행기는 쓰레기더미들과 함께 이 사막에 버려질 예정이었다네. 나와 동료들은 이곳에서 대기하다가 다른 비행기가 데리러 오기로 했었지. 하지만 그 낡은 비행기는 결국 자신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네. 아니, 처음부터 완수할수 없었던 임무였는지도 모르지.”

“그래서요? 추락후엔 어떻게 되셨습니까?”


나는 점점 노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사막 한복판에서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있더군. 기적이었지. 그렇게 큰 추락에서 살아남다니 말이야. 물론 사지가 멀쩡하지는 않았지만.”


그제서야 노인의 다리 한쪽이 이상하게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인의 찢어진 바지사이로 햇빛이 반사되어 내 눈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다리 한쪽이 없는채로 사막에서 하룻밤을 보냈지. 솔직히 죽었다고 생각했다네. 다음 비행기가 우리를 데리러 오는것은 3일후로 예정되어 있었거든. 물도, 음식도, 심지어 다리도 잃은 채로 3일을 버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네. 그런데, 다음날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이 문이 나를 반겨주더군.”

“그러면 하룻밤사이에 이 문이 저절로 생겨났단 말입니까?”


내 목소리가 나도모르게 커졌다.


“그러면 외계인이 와서 밤새 이 문을 만들어주고 도망갔겠나? 그 의견도 어느정도 일리는 있다고 보네만, 난 스스로 만들어졌다고 보네. 그리고, 이 문이 내 다리도 고쳐주었거든.”


노인은 바지를 걷어 다리를 보여주었다. 노인의 다리가 붙어 있어야할 자리에는 특이하게 생긴 쇠 파이프 같은 것이 대신하고 있었다. 그 파이프는 눈에 익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특이한 삼각형모양으로 뻗어있는 그것은 분명 어디선가 많이 본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곧 정답을 찾아냈다.


“자전거 프레임이 아닙니까?”

“맞았네. 자전거 프레임이지. 일어나보니 내 다리 한쪽이 문 밑에 깔려있었네. 기겁한 나는 천천히 다리를 문에서 빼어보았지. 다리는 쉽게 빠졌고, 내 다리가 달려 있어야 할 자리에는 이 자전거 프레임이 붙어있었지.”

나는 할말을 찾지 못했다. 하룻밤사이에 이렇게 거대한 문이 만들어졌다는 것도 믿기 힘든데, 사람의 다리마저도 고쳐주었다고?

“물론 멀쩡하지는 않네. 조금만 걸어도 꽤 힘이 들거든.”


노인은 프레임다리를 까딱거렸다.


“그 뒤로는 이 문과 같이 생활했지. 내가 가져온 쓰레기들이 이 문의 재료라는 사실은 부정할 여지가 없다네. 내가 주변을 아무리 찾아봐도 산더미처럼 쌓여있어야할 쓰레기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거든.”

“구조대는 오지 않았습니까?”

“오지않았네.”


노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 문은 신기하게도 물도 뱉어내고 먹을 것도 뱉어냈지만, 대화할 상대는 뱉어주지 못했네. 3일후에 오기로 했던 후발대도 오지 않았고. 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 문에 붙어 목숨을 이어가는 것 뿐이었지.”


노인이 문을 쓰다듬었다. 순간 문이 몸을 약간 흔든것 같았지만 내 착각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이 문과 나와의 생활이 시작되었지. 가끔씩 자네같은 조난객들이 찾아와서 말동무가 되어주고는 했지.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구조대를 보내주겠다고, 반드시 이곳을 다시 한번 찾아오겠노라고 말하고는 떠나갔지. 그리고 한명도 돌아오지 않았다네. 어쩌면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지.”


그렇게 노인이 이야기가 끝났다. 노인은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 몸을 앞뒤로 기울이기 시작했다.


“더 질문하고 싶은것이 있나? 자네는 오랜만의 손님이거든. 적적했는데 말동무가 되어주게나.”

“이 문을 통과해보신적 있으십니까?”

“있지, 그럼.”


노인이 대답했다.


“이 문은 어디로 통하는 문입니까?”

“어디로 통할것 같나?”

“아무데도요.”

“알고 있으면서 묻는 이유는 무언가?”

“이 문의 탄생배경을 알게되자 궁금해졌습니다. 노인장의 다리를 고쳐줄 정도의 능력이 있으면 어디론가 이어줄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알고 싶으면 한번 통과 해보겠나? 내 문을 열어주겠네.”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몸을 일으켜 문 앞으로 갔다. 노인이 손에 문을 대자 거대한 문이, 내가 죽을 힘을다해 밀어도 열리지 않을 것같던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그 거대한 문 뒤로는 내 등뒤로 있는것과 똑같은, 모래와 모래와 모래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지나가보시게.”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치 이 문을 지나가면 무엇인가가 크게 달라질것만 같았다. 나는 천천히 문을 통과했다. 내가 문을 지나갈때 문은 금속성의 소리를 내질렀고, 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원래 이런 소리가 납니까?”


내 목소리에서 공포심이 묻어있는 것을 읽었는지 노인이 껄껄 웃었다.


“이 문은 자신을 지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 해는 끼치지 않을테니 안심하게. 심술은 조금 부릴지 모르지만. 나는 이 문을 골백번도 넘게 지나다녔다네. 하지만 꼭 그러고 나면 미지근한 물을 주거나 약간 덜 익은 과일을 주는등 심술은 부린단말이지. 왜 그러는 지는 나도 잘 모른다네.”


그 말을 듣자 문을 다시 통과해 지나갈 생각이 싹 사라졌다. 나는 문을 빙 돌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래, 뭐가 달라진것 같나?”

“아니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네요. 만약 쓰레기들이 스스로 문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왜 하필 문의 형태를 취했을까요?”

“나도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보았지. 아마 자신들과 똑같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

“똑같다뇨?”

“버려진 쓰레기들과 안과 밖은커녕 경계조차 없는 사막 한복판의 거대한 문. 둘다 용도를 잃은 쓸모없는 물건들이지 않나?”


노인이 말하자 문이 삐걱거렸다. 노인이 문을 쓰다듬자 소리는 금새 멎었다.


“뭐, 정확한 답은 이 문 만이 알겠지. 저 언덕을 넘어가면 오아시스가 하나 보일걸세. 그곳에서 목을 축이고 같은 방향으로 쭉 가면 내가 살던 도시가 나올거야. 꽤 걸어야 할테니 물은 넉넉하게 챙기고. 그곳에서 철문을 봤다고 하고 도움을 청하면 누군가 도와줄걸세. 그 마을에는 이 문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꽤 많거든. 아니, 많았었다고 말해야하나?”

“노인장은 가지 않으십니까?”

“내가 가면 문은 누가 지키나?”


노인이 그렇게 되물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제서야 나는 노인에게 문이 어떤 존재인지 조금이나마 깨달을수 있었다. 그는 문과 하나였다. 그는 절대 문을 버려두고 가지 않을것이다.


“제가...제가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내가 지난 20년간 그 말을 몇번이나 들었을 것 같나?”

“저는 다릅니다.”

“그말도.”


말문이 막혔다.


“자네는 오랜만에, 거의 10년만에 이 문을 찾아온 사람일세. 그 이전의 조난객들은 이 문을 발견하고 나에게 달려와 그저 이야기인줄만 알았다는 말을 하곤했지. 그런데 자네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이제 내 얘기를 하지도 않는다는 말이지. 난 잊혀졌어. 이 문과 함께.”


노인의 말에서 그가 보내왔던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왔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이 사막 한가운데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조난객을 기다리며 보냈을 그의 지난날들을 상상해보았다. 20년간의 기다림. 이 이상하고 거대한 철문과 단둘이 보냈을 그 영겁의 세월들이.


“그렇다면, 이 문과 그 문을 지키는 노인장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겠습니다. 저는 변변찮지만 글을 써서 먹고 삽니다. 아무도 이 사막 한복판의 문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하겠습니다. 노인장이 이곳에서 눈을 감으셔도, 시간의 풍파에 결국 이 문이 쓰러지는 날이 오더라도 이 문이 서 있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기억하도록 만들겠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은 사막에서 길을 잃었을 때 밤하늘의 별이 아닌 이 문을 찾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을겁니다. 아무도 당신을 잊지 않을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겁니다.”


내 목소리가 떨렸다. 노인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와 동시에, 분명히 문이 좌우로 흔들렸다.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처음이구만.”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가 젖어들어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려줄까.”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노인이 말을 이었다.


“내 다리를 대신해주고 있는 이 자전거 프레임말인데… 사실 내 자전거일세.”

“네?”

“아니, 내 자전거였던 것이라고 해야겠지. 이 곳으로 오기 하루 전, 새 자전거를 샀거든. 낡은 옛 자전거를 쓰레기장에 내다 버렸지. 그런데, 내가 버린 그 자전거가 내 다리가 되어있더군.”


나는 잠시 경외심에 가득 차 노인장의 다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네의 제안말인데. 그럴 필요없네.”

“예?”

“나는 오래 살았어. 이 문도.”


문이 항의하듯 삐걱거렸다. 노인은 문을 흘끗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이젠 조난객도 찾아오지 않아. 세상이 그만큼 좋아졌다는 의미겠지. 우리는 조난자들의 길잡이라는 마지막 용도마저 잃어버렸어. 그상태로 10년이라는 세월을 더 살았다니, 과분하기도 하지.”

“그렇다면 저와 함께 도시로..”

“왜 아무도 날 찾아오지 않았을 것 같나?”


노인이 조용하게 물었다.


“왜 3일 후에 오기로한 구조대가 오지 않았을까? 날 죽었다고 생각한거야. 아니, 죽었으면 이라고 생각한것이지. 가뜩이나 평판이 좋지 않은 시장이었네. 여기서 인명 사고가 났고, 그걸 구조하기 위해 구조대를 파견하면 일이 커졌을테지. 그래서 묻어버린거야. 처음부터 쓰레기를 사막에 버린다는 계획도 그리 떳떳한 계획은 아니었거든. 난 버림받은거야. 이 쓰레기들처럼. 쓰레기치고는 살 만큼 살았다네.”


노인의 말투가 너무나 단호해 나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노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떠나게. 그래도 기억해주고 세상에 내 존재를 알려주겠다니, 그것만큼 위로되는 이야기가 없군.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야. 더는 없을것이야.”


나는 반쯤 강제로 문에서 쫓겨났다. 노인이 챙겨준 과일과 물이 배낭안에서 출렁였다. 나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모래 언덕을 반쯤 올라 뒤를 돌아보자 노인이 문에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짐작컨대 문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노인은 위로하듯 문을 몇번 쓰다듬더니, 문을 열었다. 문은 천천히 열렸고, 노인 역시 천천히 문을 통과했다. 그와 동시에 철문이 흔들거리더니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도저히 그 광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노인을 크게 소리쳐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 차갑고 웅장한 철문은, 거대한 쓰레기더미가 되어 천천히 무너져 노인과 함께 사막 한복판에 내려앉았다. 문이 완전히 무너져내리자, 나는 그 곳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 모래먼지가 가라앉은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듯 했다. 나는 철문이 서있던 자리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모래 사이로 무엇인가 반짝이는 물체를 발견했다. 나는 그 물체를 덮고 있는 모래를 걷어 냈다. 그곳에는 노인의 다리가, 아니 노인의 다리였던 자전거 프레임이 햇빛을 반사하며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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