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그리고 가족의 달
1987년 5월 2일은 우리 아빠 엄마가 지금이나 당시로나 드문 약혼 관계를 청산하고 결혼한 날이다. 그리고 신혼여행으로 떠난 제주도에서 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날 Babe(베이브)라는 일본 여성 듀오의 'I Don' Know!'라는 곡이 발매되었다. 가사나, 멜로디나 사진 속 풋풋한 우리 아빠 엄마의 표정 마냥 싱그러운 사랑 노래.
몇 년 전, Wink로 대변되는 일본 여성 듀오 카테고리를 디깅하다가 알게 된 Babe의 'I Don't Know!'라는 곡을 미디어를 통해 우연찮게 다시 듣게 된 것은 작년 이래저래 말이 많았던 'PACHINKO'라는 작품에서다. 나의 롤 모델이자 (불륜 이혼 선배인) 윤여정 선생님의 손자로 등장하는 진하라는 배우분이 직장에서 사고 치고 빗속에서 광기 어린 춤을 추고 난 뒤 다음 화 인트로에서 흘렀던 곡으로 기억한다. 극 중 진하라는 분이 맡은 역할은 재일교포임에도 철저하게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다가 갑자기 직장에서 한순간의 계기로 뒤틀린 역사로 인해 일본으로 건너올 수밖에 없었던 조부모님과 그 2세로 살아간 부모님의 입장을 생각하며 직장의 지침에 반하는 행동을 하며 손해를 입히는 사고를 친다. 그리고 뛰쳐나가 비 내리는 거리 한복판에서 평소 어떻게 춤춰 왔는지 알만한 미친 춤사위를 선보인다. 그다음 화에서 맑게 갠 도시의 아침 정경과 함께 흐르는 'I Don't Know!'의 상큼한 멜로디와 소녀감성의 가사.
I Don't Know Lonliness 君の Lonliness
(저는 외로움을 몰라요 당신의 외로움이요)
カッコつけた Broken Heart だめよ 走りださなくちゃ
(한껏 멋을 부린 실연당한 마음 안돼요 앞서 나가지 않으면)
I Don't Know Lonliness 君の Lonliness
(저는 외로움을 몰라요 당신의 외로움이요)
みんなに愛を配る 天使なんていないから
(모두에게 사랑을 나누어주는 천사 따윈 존재하지 않으니까)
뭘 의도한 삽입곡일까?
한껏 춤추고 마음이 개운해져 상쾌해진 배우의 기분을 의미? 80년대 버블이 한창이던 일본이라는 국가를 상징하는 곡?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후로 나도 이 곡을 들으면 5월이 생각나면서 마침 가족의 달답게 내 위의 모든 부모님 세대들을 떠올린다. 벌써 이 나이에 결혼, 이혼, 소송 등을 겪으며 나만 힘들게 산다 생각하며 내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다가 5월, 다시금 굴곡 없는 인생 없다며 모진 풍파를 지나오며 아직도 열심히 살고 있는 내 부모님들의 모습을 되새긴다. 그리고 나도 알 수 없는 상쾌한 기분에 휩싸인다. 기쁘면서도 슬픈, 슬프면서도 기쁜, 바보같이 아무 걱정없이 열심히 살 줄만 알았던, 하지만 싱그럽고 풋풋하던 그 시절의 느낌..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내게 이 느낌을 노래로 표현하자면 확실히 Babe의 I Don't Know이다.
5월 가족의 달을 기념하며 추천한다.
Babe [I Don't Know] ▶ https://youtu.be/s7jHKnsmjKk
[또 좋아하는 80년대 일본곡]
+ Babe♪ Give Me Up! : Michael Fortunati 리메이크곡
+ COCO♪ 思い出がいっばい : 애니 「란마 1/2」 성우들이 부른 OST
+ 中原めいこ♪ ダンス·イン·ザ·ダメモリーズ : 애니 「오렌지 로드」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