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릉밈씨 May 05. 2023

한류 말고 라틴붐 ①

 지난 4월, 급작스레 스페인으로 장기 파견된 동생을 만나기 위해 예정에도 없던 스페인에 가게 되었다. 내게 스페인, 에스파냐.. 이 문화권의 것들은 굉장히 생소하고 관심이 없던 것들이다. 그전까지 내가 알던 스페인은 거칠게 투우를 하거나 마구잡이로 토마토를 던지는 모습, 2002년 월드컵 때 무섭게 축구를 하던 선수들의 모습들뿐이었다. 그리고 시간도, 돈도 없고 너무너무 가기 귀찮았다. 하지만 혼자 먼 이국 땅에 동떨어지게 된 동생을 걱정하는 부모님과 예비 올케를 위해, 주말마다 외롭다고, 심심하다고 하는 동생을 위해 큰맘 먹고 스페인에 가서 얼굴 한번 보고 오리라 결심을 했다.


 사실 출반 전까지도 절반은 동생이 비용도 지불하고 여행 계획을 디벨롭 시켜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략적인 일정과 동선을 짜고 동생에게 공유했다. 동생은 특출난 조련사였다.

 '누나, 여기 여기 보충해서 빨리 예약해.'

 '누나, 여기 기차도 예매해.'

 1시간 정도 메시지를 나누며 모든 예약을 마친 후에 동생이 하는 말

 '누나, 근데 나 누나가 스페인 오기 열흘 전에 잠깐 한국 가.'

 

 나 도대체 스페인 왜 가는 거야?!!




 예비 올케랑 저녁을 먹으며 물었다.

 "너는 왜 스페인 안 가?"

 - "언니. 저는 휴가가 없어요."

 "왜? 결혼하고 신혼여행 그렇게 오래가?"

 - "아뇨. 오빠(내 동생) 한국 왔다가 스페인 돌아갈 때 저는 영국 가요. 저희 친오빠 영국에서 결혼하거든요."

 "그럼 ☆☆이(내 동생)는?"

 - "아~ 오빠(내 동생)는 스페인 갔다가 잠깐 영국 들러서 결혼식 보고 간대요. 저희들은 영국에서 또 만나요."


 아하? 나 도대체 스페인 왜 가는 거야?!! 22222222222




 시간이 흘러 봄이 되었고, 나는 전혀 그립고, 외롭고, 심심할 틈이 없는 동생을 만나러 터덜터덜 스페인으로 향했다. 비행시간도 13시간이나 되었다. 그렇다. 나는 스페인에 대한 아무 이해도가 없었다. 유럽 중간 어딘가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라는 한국에서 제일 먼 곳, 끄트머리에 위치한 유럽 국가였다.

 바르셀로나로 입국했는데 시간은 저녁 7시경으로, 해가 지면 여느 구미 국가처럼 어쨌든 위험할 거라 생각했던 그 나라는 그 시간에도 아직 해가 중천이었고, 사람들이 한창 저녁식사를 하기 직전인, 한마디로 한창 사람들이 활발히 움직이던 시간대였다. 그때의 나는 그런 걸 전혀 몰랐으니까 무조건 위험할 거라 생각하고 그날은 그냥 택시를 타고 호텔로 직행해 바로 취침했다.


 다음날도 별건 없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 여기저기 여행한 곳이 많아지게 되니까 눈앞의 정경도 전혀 이국적이거나 위화감이 있다거나 하지 않았다. 성당도, 광장도, 시장도.. 그냥 한국에서 돌아다니듯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고 나는 일말의 낯선 감정 하나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너 어디서 왔어?"

 식사를 위해 들른 식당 종업원이 스페인 억양이 묻은 귀여운 말투의 영어로 내게 물었다.

 - "South Korea." (*남한, 북한을 헷갈려 하는 외국인들이 많아 으레 South를 붙여 대답한다.)

 "그래? 근데 왜 혼자야? 여기 한국인들 많이 오는데, 지난주에는 50명이 단체로 다녀갔고, 2주 뒤에는 30명이 단체로 와. 항상 그룹으로 다니는 것 같아."

- "나는 여기 동생 만나러 왔어. 근데 걔는 오늘 평일이라 출근한데다가 지금 마드리드에 있어. 주말에 만나러 갈 거야."

 "동생이 스페인에서 일하는구나. 나 너 주려고 커피, 컵에 가득 채워서 들고 왔어. 맛있게 먹고 내일 또 와!"

 정말 친절한 사람b


 든든히 식사도 했겠다, 시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서점에 들렀다. 마침 바르셀로나는 4월 23일 산 조르디라는 바르셀로나의 수호성인(聖人)의 날을 기념하여 축제 분위기에 돌입한 상태였다. 여러 가지 풍습이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문호 중 셰익스피어와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가 사망한 날이라 여성이 남성에게 책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서점이 매우 북적였다. 그런데 내 눈에 확 띄는 것이 있었다. 만화책이었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프랑스, 벨기에 못지않게 만화 소비가 큰 나라라고 한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 스페인어판, 「귀멸의 칼날」 스페인어판.. 나 또한 못지않게 만화책을 열심히 읽고 보는 스타일이기에 읽지 않은 만화책을 찾는 것이 더 힘들었다.

 'La Caja Azul.. 저 표지는 「푸른 상자」라는 만화책인데, 그럼 'La'는 'The'로 이해하면 되고 'Caja'가 '상자'이고, 'Azul'이 푸르다는 뜻인가 보다.'

 'Llegando A Ti.. 저 그림은 「너에게 닿기를」인데, 그럼 'A'가 '~에게'이고, 'Ti'가 'You'가 되겠구나.

'Llegando'는 닿는다는 뜻이겠네?'


 나는 그렇게 스페인어를 머릿속에 자동 변환했다. 몇 개 단어를 머릿속에 저장하고 나니 길거리의 표지판과 간판들이 읽히기 시작했다. 경력직은(덕후는) 무서운 존재였다.


 그렇게 스페인이 소리 소문도 없이 내게 스며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I Don't Know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