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a! Camavinga!
두 번째 날은 가우디 데이! 사실 가우디도 장난감 같은 건물을 만든 사람.. 같은 얕은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회자되는 명성 높은 사람이니 볼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에 현지 원데이 투어를 예약했다.
가우디가 생전에 만든 주요 건축물들을 돌아보며 장난감 같은 건축물을 만든 사람이라는 내 생각은 더욱 견고해졌지만 그 장난감 같은 건축물들이 1800년대 후반의 사람의 손에서 빚어진 형태라는 걸 감안하면 시대를 앞서간 엄청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시대가 받아주지 않았음에도 자기 주관을 끝까지 굽히지 않은 자신감과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어낸 능력까지 너무 감탄스러웠다. 그리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사실 이 전까지만 해도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뭔가 SF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의 우주선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내가 살아생전에 그 성당을 실제로 보리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하나하나 살펴보니 악당의 우주선같이 장난스럽게 여겼던 외관과는 달리 성당을 짓는데 들어간 흙 알갱이 하나조차도 철저하게 고민하여 설계되어 있었고, 가우디 사후에 후손들이 성당을 마저 지으며 맞닥뜨릴 문제들, 성당 주변의 모든 자연요소까지 설계에 포함시킨 점은 극 J스러움, 가히 천재적이었다.
어쩐지 가우디의 흔적이 산재해 있는 바르셀로나라는 도시 자체가 가우디가 준 선물 같이 느껴져 특별한 도시로 다가왔다.
바르셀로나에서 평일을 보내고 맞은 토요일. 드디어 동생을 만나기 위해 마드리드로 향했다. 그동안 뭔가 교통비가 아까워 계속 걸어 다녔는데 이날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스페인에서 지하철을 타 보았다. 혹시나 길을 잃을까 10분이면 가는 역을 1시간 반도 전에 길을 나섰다. 마드리드행 렌페(고속열차)를 타기 위해 산츠역을 가는 길, 개찰구에 티켓을 태그 했는데 무언가 잘못된 것일까? 통과를 할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 물어보거나 도움 요청하기 싫은데 어떡하면 좋을지 머릿속이 하얘지려던 찰나 어떤 스페인 여성분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저기요. 표 반대로 태그 하셨어요."
아.. 우리나라와 개찰구 티켓 태그 방향이 반대였다. 굳이 다가와 알려준 그 여성분이 너무 고마웠다. 한국에서는 항상 낯선 사람을 경계하도록 배우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른 나라 사람의 친절과 도움을 경험하면 마음이 누그러지고 나도 한국에 돌아가서 친절을 베풀며 살아야겠다며 감화된다. 하지만 귀국하면...
2시간 반 걸려 마드리드 아토차역에 도착하니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작 거의 2주일 만에 보는 것이었지만 해외에서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하지만 전날 가우디 투어로 체력이 바닥이 난 나는 동생과 점심 식사를 하자마자 호텔에서 낮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누나, 스페인 사람 다 되었네?"
- "왜?"
"여기 사람들 보통 8시에 출근해서 간식 시간 2차례 갖고, 점심 2시간 먹고 계속 수다 떨거나 집에 가서 낮잠 자다가 한 8~9시부터 저녁 먹기 시작해서, 많이 놀면 새벽까지 놀아."
- "일 안 해? 아니 잠 안 자?"
"응.. 그게 내가 한국에서 여기로 파견된 이유야. 스페인 직원들이 이상하다고.. 보고 오라고..."
좋은 나라다. 갈수록 호감이었다.
3시간 정도 낮잠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동생이 미리 예매한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보러 축구장으로 향했다. 십몇 년 전에 런던 아스널 경기장 근처에서 반년 정도 살았던 경험이 있는 나는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고 날뛰는 훌리건들을 상상했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들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고, 질서정연했으며, 리액션을 보일 타이밍에만 열심히 리액션을 취하며 경기를 관람했다. 타인에게 술에 취하거나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금기시하는 이 나라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점잖았고, 그야말로 양반의 모습이었다..!
그날 내 눈을 사로잡은 한 선수가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12번 선수 에두아르도 카마빙가(Eduardo Camavinga). 레게머리를 말총처럼 묶은 선수가 미드필드를 쉼 없이 뛰어다니며 공만 쫓길래 저게 저렇게까지 뛸 일인가, 저렇게까지 몸싸움을 해서 공을 뺏어야 하는가 싶었는데 종말에는 그 선수만 바라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동생과 함께 12번이라 부르다가 나중에는 야생마라 부르던 선수를 호텔에 와서 검색해 보니 카마빙가라는 선수였다. 나는 그 날로 카마빙가 선수, 레알 마드리드, 라리가 인스타그램을 다 팔로우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 신문기사, 뉴스, 관련 유튜브를 시청하다가 플레이리스트에 경기장에서 듣던 한 곡을 추가해 무한 반복하기 시작했다.
Hala Madrid...y nada más (feat. RedOne) ▶ https://youtu.be/Yc-7IQqcqeM
이 글을 쓰기로 한 오늘 아침 레알 마드리드의 코파 델 레이(국왕컵) 우승 소식이 기쁘고, 그중에서도 아래 기사가 새삼 내 일 같고 굉장히 뿌듯하다.
¡Hala! Camavinga!
https://www.sportsseoul.com/news/read/1310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