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공연임에도 넉넉히 4시간 전에 길을 나섰다. 중식 하면 역시 미국! 우육면, 마라 볶음면, 만두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운동 겸 30분 남짓 되는 거리를 걸어 루멘필드 미식축구 경기장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왠지 튀는 옷차림의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공통적으로 실버 스팽글 소재의 옷차림.. 처음엔 시애틀 사람들의 최신 유행 패션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떤 반짝이는 옷차림의 사람의 등 뒤에 BEHIVE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설마? 그렇다. 비욘세 팬덤 이름이다. 앨범 ‘Renaissance' 콘셉트 컬러에 맞춰 입은 비욘세 팬덤이 시애틀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 날은 오전부터 시애틀이 들썩였다. 시민들은 시애틀의 주요 고속도로인 I5에 콘서트 장비, 음향 시설을 실은 버스가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부터 주목하고 있었고, 식당에 가면 테이블 대화 주제에 일단 비욘세가 오늘 시애틀에 온다는 이야기가 끼워져 있었다. (에어비앤비 예약할 때도, 입국심사할 때도, 비욘세 공연 관람을 이유로 대었을 때 프리패스가 되었었다.) 루멘필드 근처 가게들은 비욘세의 히트곡을 매장에 틀고 있었다. BEHIVE는 아는 안무의 노래가 플레이되면 삼삼오오 모여서 함께 군무를 추며 입장 대기시간을 즐겼다.
좌석에 맞는 입장 게이트를 찾아 경기장 주변을 걷고 있을 때, 노점상의 어떤 여성분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헤이! 너네 그 가방 갖고 못 들어가!”
쳐다도 보지 않고 그냥 걷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여성분이 외친 말이 자동번역되었다. 그러고 보니 입장 대기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방이 없거나 투명 PVC 소재의 가방을 메고 있었다. 총기난사 사고가 많은 나라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총기 반입을 금지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룰이라고 한다.
따로 자가용이 없었던 나와 동행한 친구는 입장 게이트를 찾기도 전에 부랴부랴 근처 노점 물품 보관함에 짐을 맡기고 여권이나 지갑과 같은 중요 물품은 소형 투명 PVC 백을 구매해 담아 들고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반짝이는 소재의 의상과 응원봉이 없는 대신 불이 들어오는 소재의 모자를 착용한 BEHIVE들 덕분에 해가 지기 시작한 루멘필드 경기장의 관객석은 활기차게 빛났다.
드디어 8시! 프리 공연을 하던 DJ가 음악을 종료시키고 공연장에 새로운 조명이 켜졌다. 그런데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누가 봐도 남성, 스태프였다.....
비욘세는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