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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l 20. 2024

내 안에 나 있다. -6-

10년 후 강동하

지금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가장 바꾸고 싶은 일은? 

소소하게 생각나는 일은 있지만 그때부터 모든 삶을 반복해서 살아야 할 것을 생각하면 특별히 떠오르지 않는다. 


아, 이만하면 잘 산 것인가? 

그럼 바꾸기만 하고 바로 돌아올 수 있다면 뭘 바꾸지? 


“혹시 동하씨가 얘기 안 했어요?”

“네, 무슨 일인지 왜 돌아왔는지 그것만은 말하지 않더라구요. 이정씨는 알죠?”


이정은 천천히 끄덕였다. 다행이다. 그녀는 알고 있다. 그러나 뭔가 말할 것처럼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끝내 내뱉지는 않았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삼켜지는 그 사연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뭔가 이상한 말을 하지는 않던가요? 어떤 것에 대해서 알아보라든가. 아니면..”

“이상한 말이요? 글쎄 뭘 알아보라고 한 것은 없는데.”

“잘 생각해 봐요. 평상시에 다르게 행동한다든가. 행동까지는 아니겠지만.”


왜 바로 말하지 않고 자꾸 묻기만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미래에서 왔다는 이유로 제약을 받는 것일까?


“뭐 좀 수상한 말을 한 적은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이정이 급히 관심을 보였다. 10년 후 강동하의 말이라면 뭐든 관심을 가졌을 것이지만. 그래도 저런 표정이라는 건. 


“컨퍼런스에 가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이정씨가 주최했던 그 컨퍼런스요.”

“네? 왜요?”

“이유는 모르죠. 그냥 가지말라고만. “

“그래서요?”

“그래서가 뭐 있어요. 말 안 듣고 갔지. 그래서 이정씨도 만났고. 안 갔으면 못 만날 뻔했잖아요. 우리.”


가라앉은 분위기를 좀 바꿔 볼 생각으로 목소리톤을 조금 올렸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상하게도 내 기분도 자꾸 가라앉아 수영장 밑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것 같았으니까.

얼음이 다 녹아 맹탕이 돼 버린 위스키를 반쯤 마셨다. 맛없어.


“혹시 우리가 못 만나게 하려던 것 아니었을까요?”


이정이 생각난 게 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요? 어차피 결혼할 사이라면서. 지금 만나면 안 되나? 좀 더 결정적인 순간에 만나야 결혼하는 거였나? 그래요? 혹시 우리 처음에 어디서 만났어요?”

“결혼 못 하게 할 작정이었다면요?”

“네?”


생각지도 못했다. 10년 후 나는 이정과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니. 


“묻기 조심스럽기는 한데 10년 후에 내가 헤어지길 원했어요?”

“어떻게 그런 말을.. 동하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은 그런 사람인가요?”


이야기가 왜 이렇게? 

가만 보니 이정은 너무 감정적으로 흥분한 것 같았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1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입니다. 잊은 것 아니죠? 10년 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은 더더욱 그런 사람 아니구요. 그러니까 감정을 좀 가라앉히고. 짐작되는 게 있나 본데요. 그렇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말고 좀 말해줘요. 정말 답답해 미치겠습니다.”


“동하씨는, 그러니까 10년 후 당신은..”


그녀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어떤 금기를 범하는 것처럼 두려워했다. 말을 하고 나면 그 말이 실제 실현될까 두려워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괜찮아요. 말해줘요. 결국 나도 알게 될 일이잖아요. 안 그래요?”


이정은 결심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공기가 무겁다.


“당신은 류게릭 병에 걸렸어요.”


류게릭이라, 처음에는 단어조차 생소해서 아무 느낌이 없었다. 내가 걸릴 것이라는데도 남 얘기 같다.


“류게릭이면 퇴행성 근육질환.. 치료법이 없다는.. 내가 왜요?”


말하고 나니 조금 찜찜해졌다. 말이 씨 된다더니.


“원인은 몰라요. 그걸 알기 위해 10년 전으로 가겠다고 말했고요.”

“내가 그래서 여기로 왔다구요? 원인을 알면 10년 후에 치료할 방법은 있구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긴 한데 힘들 거에요. 10년 후에도 류게릭의 치료법은 나와있지 않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이미 많이 진행돼서.”

“많이 진행됐다면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거에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한 대답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 역시 심각해졌다. 10년 후에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라면 언제쯤 발병하는 거지? 9년후? 7년후?

종잡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아니 물어보기 싫었다. 류게릭병이면 사망선고나 다름 없는데 그게 언제 시작될 것인지를 아는게 좋을까 모르는게 좋을까? 

이정과는 다르게, 나는 나만의 이기적인 고민으로 침묵을 이어갔다.


“동하씨가 류게릭병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거죠?”

“네.”

“그리고 컨퍼런스에 가지 못하게 말렸고.”

“네.”

“그럼 확실하네요. 동하씨 성격에… “

“내 성격에?”


그녀가 10년 후 강동하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난 이미 K와 동화돼 있었다. 10년 후나, 지금이나, 나는 나다. 그건 확실하다. 


“지금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요.”

“지금도 그럴 거에요. 그러니까 내 성격에 어떻게 한다는 거에요?”

“아마 나를 만나지 않으려 하겠죠.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고통을 함께 할 필요 없고 자기 옆에서 힘들어하는 나를 보지 않아도 되니까.”


말 된다.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정말 류게릭병의 원인을 알아보러 온 것일 수 있지 않나요?”

“아니오. 애초에 이럴 목적이었던 거에요. 내가 몰랐던 거지. 닥쳐보니 이리 당연한 것을, 왜 몰랐을까?”


이정은 내가 만나본 중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인 양자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평범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감정이 연결되지 않고 들쑥날쑥했다.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아무런 전조 없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에게 공통의 문제가 생겼다. 처음 우리의 것이 생겼는데 바로 '문제'다. 정답도 정해져 있었다. ‘이별'


심플하다. 10년 후 나는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고 있고 마지막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 사랑하는 이를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이정을 만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대신, 고통도 나누지 않는 방식으로, 고통은 나누어도 아픔은 줄어들지 않으니까. 


나답다. 나다운 해결책이다. 10년 후 내가 정확히 해야 할 방식, 100% 이해한다. 동의한다. 


이정, 그녀도 이해했다. 그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양자공학자로서 타임머신을 만들었으면 뭐하나? 시간을 거슬러 왔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데. 그녀를 슬프게 하는 것이 이별일까? 무력감일까?


가까운 미래에 류게릭병에 걸릴 것이라는 사실을 포함해 10년 후 벌어질 일들을 한꺼번에 알게 된 나는 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은 이 자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7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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