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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l 14. 2024

내 안에 나 있다. -5-

10년 후 이정

미래는 언제일까? 10년 후?

1년 후도 미래고 내일도 미래다. 그럼 1시간 후는? 10분 후는?


나는 당장 10초 후의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 운명이 어떤 방식으로 날 가지고 놀지도 전혀 모른다. 


이정, 그녀..


“강동하씨, 오랜만에 이렇게 부르려니까 너무 이상하긴 한데,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내 말 끝까지 들어요.”


내 안에 10년 후의 내가 있는 마당에 더 이상할 게 어디 있나? 

나는 완전히 들을 준비 됐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뭘 말하든 절대 이상하지 않겠다!


“당신과 나는 결혼했어요.”

“네?”

“아니, 그게 아니라 결혼할 거에요.”


아,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그렇게 놀라지 않겠다고 해놓고도 눈을 크게 뜨고 이정의 얼굴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정은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내가 진정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미래에 결혼할 사이라는 것이죠? 희망이나 예측 이런게 아니라 운명적으로 결정돼 있는..”

“운명이 아니고 그냥 사실이에요. 이미 벌어진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에겐 이미 일어났지만 지금 강동하씨에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실.”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에게 안 일어나고 그녀에게 일어났다는 것은.. 그녀가 미래에서 왔다는 뜻이다. 다만 너무 믿기지 않아 이해 못하는 척하고 있을 뿐. 나는.


“혹시, 이정씨가 미래에서…”

“맞아요. 나는 미래에서 왔어요. 정확히는 내 의식만 10년 후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왔죠.”


이번에는 내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완전히 이해했다. 당연하지 않나? 

내 안에 10년 후 내가 있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그렇게 못할 거 없다. 게다가 둘은 결혼한 사이라는데.. 

‘K 이 자식이…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지 않았구나.’ 


당장이라도 항의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별로 놀라지 않네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아니면 취했다고?”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데, 그 얼굴에 100가지 감정이 섞여 있어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분노, 애정, 그리움, 슬픔, 반가움, 절망….

이상한 건 그녀의 100가지 감정이 그대로 나에게도 느껴졌다. 마치 K의 감정이 전이되는 것처럼. 


혹시, 이 자식 깨어났나? 아직이다.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요?”

“경험자니까요.”


다시 침묵. 그녀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경험자라면.. 10년 후의 동하씨가 왔었다는 이야기인가요?”

“왔다 간 게 아니라 지금도 있습니다.”

“네? 지금도 있다구요. 현재의 강동하씨와 미래의 강동하가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거에요?”


이정은 완전히 놀란 것 같았다. 정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다.


“의식 공유라는 말은 틀린 것 같고, 별도의 인격으로 존재합니다. 우리 둘이 대화도 하는 걸요.”

조금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이정이 당황했다.

“대화를 한다구요? 그럼 지금 동하씨가 머릿속에 같이 있는 거에요?”


그녀는 내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네. 이게 많이 이상한 건가요? 이정씨도 미래에서 왔다면서요?”

“달라요. 혹시 그러면 동하씨를 불러 줄 수 있어요? 의식 전면에 나오게 할 수 있어요?”


또 저 표정. 애절하고 간절하고 염원하고 그리워하는 얼굴. 


“그건 안돼요. K는.. 아, 우리끼리는 이렇게 정리했어요. 10년 후는 K, 지금은 강동하로.. 여튼, K는 나하고만 얘기할 수 있어요. 내 입을 빌릴 수 없구요. 내 몸은 온전히 내가 지배해요.”


이정은 천재박사 답게 우리의 기묘한 상황을 이해한 것 같았다. 고개를 조금 끄덕이더니.


“미래와 현재가 대화를 한다.. 그러면 대신 내 말을 전해줄 수 있어요? 내가 왔다고. 나도 미래에서 동하씨를 찾아 여기 왔다고.”


확실해졌다. 미래의 이정이 과거로 회귀한 남편을 찾아 역시 회귀한 것이다. 그러나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미안합니다. 요즘 이 친구가 영 정신을 못 차리네요. 왔다갔다 하는게, 돌아갈 때가 돼서 그렇다고는 하던데. 나중에 깨어나면 꼭 전할게요.”


난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이정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잘못된 것이다.


“미래로 돌아간다구요? 동하씨가 그렇게 말했어요?”

“네. 때가 되면 돌아갈 거라고 말했는데 그게 아닌가요?”


이정은 양자물리학자이자 세계적인 양자컴퓨터 공학자이다. 양자컴퓨팅을 이용한 시간여행이 가능해진다면 그녀만한 전문가 없을 것. 그런 그녀가 의심하고 있었다. 


“돌아갈 수 없어요.”


들으라는 건지, 혼잣말인지 목소리가 작아서 못 들을 뻔 했다. 


“못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잘 모르겠어요.”


몰라서 모른다고 하는 것인지, 알아도 말해주고 싶지 않은 것인지.


“내가 듣기에는 분명히 돌아간다고 했어요. 거짓말할 이유도 없고.”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K가 돌아가지 않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 있다면, 나는 평생 하나이면서 둘이 될 것이다. 떨어지지 않는 완벽한 친구. 이상적이지 않나?


그렇기에 ‘돌아가는 방법이 없다'는 이정의 말이 불안요소가 될 줄은 조금도 몰랐다.


“의식전송을 개발한 당사자로서 분명히 말하지만 돌아가는 방법 같은 건 없어요. 의식전송은 일방통행이라구요. 애초에 그렇게 설계 됐어요.”


이정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실 하나 더, ‘의식전송’이라는 미래 기술을 개발한 당사자가 이정이다.


“내가 이해를 못해서 그런데, 못 돌아간다는 게 지금 기술이나 장비가 없어서 그래요? 그런 것이라면 이정씨가 개발하면 되지 않을까요? 이정씨도 왔으니까. 개발자라면서요?”


고개를 젓는다.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의식전송 원리를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에요. 시간은, 사람들 생각처럼, 그러니까 우리는 과거의 내가 있고 미래의 내가 또 있고 이런 식으로 존재하지 않아요.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는 건 편의상 그렇게 하는 것이고 실제 시간은 그냥 하나에요. 그리고 인간의 의식도 하나이고. 그렇기 때문에 의식을 되돌리면 과거의 특정 지점으로 회귀해서 합쳐지는 것인데…”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합쳐지는 것이라면 지금 ‘나'는 뭔가?  그때 K가 처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처음에 K도 비슷하게 말했는데,미래의 의식이 현재의 내 의식을 대체했어야 했는데 실패한 것 같다고.”

“맞아요. 의식전송이 제대로 됐다면 미래의 동하씨 의식이 현재 강동하씨의 의식을 덮어 썼을 거에요.”

“덮어 써요? 파일 덮어 쓰기 같이? 그럼 나는요? 어떻게 되는데요? 사라져요?”

“그런 말은 무의미해요. 인간 강동하의 의식은 하나니까. 물론 지금 ‘나'라고 자각하는 의식은 미래의 ‘나'에 합쳐져서 자각할 수는 없겠지만.”


열심히 설명하는 듯했지만 이정은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멈췄다. 

그녀는 하마터면 없어질 뻔했던 내 기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다만, 지금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정리는 내 몫이었다. 


“정리해보죠. 이정씨는 미래에서 왔어요. 그리고 현재의 이정씨 의식을 overwrite 한 것이고.”

“네.”

“2023년의 이정씨는 없는 거에요. 의식전송이 성공했기 때문에.”

“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멀쩡히 있어요. K도 있고. 이건 뭐가 잘못된 거라는 거죠?”

“네.”

“그런데 K는 미래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그럼 K는 어떻게 되는데요?”

“미래에서 온 동하씨가 자꾸 사라진다고 했죠? 그런 거라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강동하씨 의식에 합쳐지는 중일 거에요.”


합쳐져? 날 overwrite 못했으니 역으로 overwrite 된다는 거지? 

그러나 되묻지 못했다. 

이정, 그녀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자기 입으로 말해 놓고도 10년 후의 강동하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사랑하는 이를 쫓아왔는데 그는 없어진다니..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슬프지? 이해는 가지만 이성적으로는 아무 느낌이 없는데. 

내가 이정 박사와 결혼했다고 해도 그건 미래의 일이고, K가 사라진다 하지만 슬플 정도는 아닌데.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요.”

“괜찮아요.”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는 모습이 더 애처롭다. 그냥 눈물 흘리며 소리 내어 울었으면 좋겠는데 참는다.  


“제가 돌아온 날은 컨퍼런스가 있기 하루 전이었어요. 원래는 나까지 오려는 계획은 없었는데 동하씨가 떠나고 전송 프로토콜 중에 잘못된 코드가 섞여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너무 불안해서, 참을 수 없고, 그래서 돌아온 것인데, 날 보는 당신 표정을 보고 한눈에 알아챘죠. 당신은 내가 사랑한 강동하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어땠는데요?”

“얼굴은 똑같았지만… 알 수 있었어요. 당신이 아니라는 것을.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하지만 나보다 늦게 올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 적은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연락을 기다렸죠. 결국 이렇게 돼 버렸지만.”


내가 연락할 때까지 그녀가 먼저 연락하지 않은 이유가 설명됐다. 실망하기 싫어서. 늦게라도 10년 후의 강동하가 의식전송에 성공했다면 누구보다 먼저 그녀를 찾았을 것이니까. 


“힘들겠지만 하나만 묻죠. 10년 후의 나는 왜 과거로 돌아온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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