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마지막회
화장실에 다녀오니 시영은 바에 업드려 졸고 있었다.
"짠한 녀석. 남들이 보면 전부 다 가진 놈이 뭐 이리 고민이 많은지 하겠지. 하긴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건지.. 시영아, 대리는 불렀어?"
대답이 없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영호는 시영을 살짝 흔들었다.
"야, 죽은 거 아니지?"
그래도 일어나려는 기척을 보이지 않으니 불안하다. 귀를 대보니 숨소리가 들렸다.
"다행이 살아는 있네. 아, 이거 어쩌지? 대리 대신 불러야 하나?"
그때 시영이 테이블에 놔둔 스마트폰이 울렸다. 대리인가? 누군지 보려는데 그새 끊겼다.
"여기 계산은 했죠?"
마침 바텐더가 보여 물었다. 바텐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술 취한 와중에도 계산을 끝낸 것이다.
"기특한 놈. 오늘도 잘 얻어 먹었다. 그런데 대리는 왜 안 와? 계산할 정신이면 대리도 불렀을 텐데."
슬쩍 귀찮아진다. 그도 꽤 취했다. 빨리 집에 가서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두고 갈까? 유혹이 생겼지만 유혹일 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인간이 할 도리가 아니지. 그런데 속이 좋지 않다. 공짜라고 너무 잡다하게 먹었나 보다.
"여기 소화제 같은 건 없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정리하던 바텐더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바텐더도 물주가 누군지는 기가 막히게 안다. 그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얻어 먹는 놈이 요구는 열라 많네.' 자존심이 상한다. 할 수 없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대리운전이 온 것이다.
아니다. 여자다. 그것도 아는 여자.
"영호씨? 와, 오랜만이네요."
시영의 와이프, 정확히는 엑스 와이프였다.
"아..안녕하세요. 여긴 어쩐 일로.."
"당연히 내 남편 데리러 왔죠."
"네?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연락 받았으니까."
그새 바텐더가 다가와 자하에게 고개를 꾸벅했다. 자하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시영에게 다가갔다.
"잘 먹지도 못하면서 웬 술을 이렇게... 영호씨 보지만 말고 좀 거들죠?"
영호는 술이 확 깨면서 얼떨떨해졌다. 그녀를 실제 본 건 이번이 겨우 3번째다. 결혼식 합쳐서. 그런데 사람 부리는게 아주 능숙하다.
"제가 먹인 게 아니라 혼자서.. 사실 얼마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알아요. 누가 먹인다고 먹을 사람 아닌 거. 그래도 꽤 늦게까지 있었네. 고마워요."
"네? 네."
그녀의 입에서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말이 나왔다. 고맙다니 당황스럽다. 뭐가 고맙다는 것일까? 시영이랑 늦게까지 놀아줘서 고맙다는 것인지, 아니면 술 취해 자는 놈을 버리지 않아서 고맙다는 것인지, 부축하는 걸 도와줘서 고맙다는 것인지.
"그런데 괜찮습니까?"
궁금해서 미치겠지만 직접 물어보지는 못하겠다. 이혼했으면서 이 새벽에 엑스 남편을 데리러 온 이유.
"뭐가요?"
"이혼했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거. 신고했대요?"
자하는 꼭 남의 일처럼 물었다. 정말 모르는 것처럼.
"아직 신고는 안 했다고."
"나도 안 했는데. 그럼 아직 부부 아닌가?"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시영을 차 뒷좌석에 밀어넣었다. 꽤 조심스럽다. 더 이상한 건 기사가 있는데도 직접 시영을 데리러 왔다는 점이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깐만요. 영호씨."
"네?"
"앞으로도 내 남편 잘 부탁해요. 친구라고는 영호씨뿐인 것 같은데."
"네. 당연히."
"그럼 화이팅."
시영과 자하를 태우고 멀어져 가는 승용차의 꽁무니를 바라보며 영호는 넋빠진 얼굴이 됐다.
뭐가 화이팅이야?
part 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