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호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노트북 위로 유리창이 있고 창밖으로 푸른 강이 보인다. 강 위에 하늘과 구름, 바람이 불어 하늘이 흘러가는 게 느껴진다. 살아있을 때 그토록 원했던 작업실이 이곳에 갖춰졌다.
양쪽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대고 두통이 있는지 생각했다.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 ‘찌잉’하며 늘상 울려대던 이명도 사라졌다. 너무 아무 느낌이 없다는 게 오히려 문제, 괜찮다. 고통보다는 무감각이 백배 낫다.
마우스를 움직여 한글을 실행하고 최근 폴더를 뒤졌다. 아쉽게도 아무것도 없다. 의식전송 며칠 전까지 쓰고 있었던 소설이 통째로 사라졌다. 현우가 그녀의 미완성 소설까지 끌어오진 못했던 것이다. 당연하다. 지현우는 그녀가 다시 소설을 쓰고 있는 줄도 몰랐다.
‘괜찮아. 다시 쓰면 되지’
그녀가 쓴 소설의 첫 구절을 떠올렸다.
성당 안에는 파란색 조명이 켜져 있었다. 예수의 십자가상 뒤로 교회 첨탑 모양의 장식이 둘러쳐진 것도 신기한데 마치 하늘을 꾸민 것처럼 제단을 밝힌 파란색 조명은 은은하고 신비한 빛을 쏘아내고 있다......
어제 쓴 것처럼 기억이 난다. 지호는 정신없이 소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써도 힘들지 않고 피곤하지도 않다. 통증 센서티브를 낮추니 계속 앉아있어도 엉덩이가 아프지 않았다. 배고픈 건 조금 참으면 사라져버리고, 화장실 갈 필요도 없다.
글쓰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가끔은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지호는 머릿속에 기억해 놓은 소설을 노트북창에 옮겨 썼다. 그렇게 꼬박 3일을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키보드만 두드린 끝에 지난 몇 달 동안 써왔던 소설을 거의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다.
“조심해요! 총이에요.”
Han의 외침과 동시에 총소리가 울렸다. 처음 들어본 권총 소리는 폭탄이 터진 것처럼 크게 느껴졌다.
그녀의 글쓰기는 소설의 클라이맥스 부근에서 멈췄다. 그 다음은 원래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억은 이곳에서 끝났다. 이제는 썼던 소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을 해야한다.
그런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가 생각하기를 멈춘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없는 심장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할 건 없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면 모레, 글은 생각날 때 쓰면 된다고 위로했다.
‘뭘 좀 먹어볼까?’
포에버월드의 기본 생활방식에 대해서는 박장우에게 대략 설명 들었다. 하지만 기본 중의 기본, 나가서 사 먹지 않으면 어떻게 음식을 구하는지 모르겠다.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도 냉장고는 없었다. TV는 방마다, 거실과 욕실에도, 심지어는 천장에도 빠짐없이 설치돼 있는데 먹거리와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다 골동품 같이 생긴 구형 전화기에 눈길이 갔다. 전화기를 요모조모 자세히 보니 빨간 불빛이 깜박거린다. 그 밑의 버튼을 누르니 LED 창에 메시지가 떴다.
::: 클리닉 기술지원팀입니다. 포에버월드 이용 안내를 위해 콜센터 연결을 부탁합니다.
‘지현우다’
콜센터에 전화를 걸고 기술지원팀에서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더니 드디어 지현우와 연결됐다.
“현우야 어떻게 된 거야?”
=너야말로 어떻게 된 거야? 메시지 못 봤어?
“지금 보고 연락한 거야.”
=그게 언젠데 이제 연락해? 나 미치는 줄 알았다.
“미안, 글 쓰다 보니 시간 가는 걸 몰라서. 여기는 이상해. 시계를 안 보면 얼마나 시간이 갔는지 알 수 없어.”
지현우는 상상이 됐다. 현실세계에 있을 때도 글 쓸 때는 밥 먹는 것도 잊곤 했다. 그런데 포에버월드에서는 글 쓰는데 방해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그래도 잠은 꼭 자야 해. 안 자면 코어 뉴런에 비활성 메모리가 너무 많이 쌓여서...
“알았어. 잔소리 그만해. 그보다 우리 중요한 할 말이 있지 않아?”
지호는 가장 껄끄러운 문제를 꺼냈다.
=아, 그거. 꼭 지금 얘기 안 해도 되는데. 그보다 뭐 필요한 거 없어? 내가 어떻게든 마련해 볼게.
“없어. 그냥 지금 말해줘. 내가 여기서 뭘 해야 하는데.”
현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뭐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급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다. 대책을 세우기도 전에 지호가 의식불명이 됐고, 포에버월드에 전송한 뒤에는 한동안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게 말이야. 참, 박민혁 사장하고 통화했다고 했지? 뭐라고 말 안 해?
“응, 자기가 계약상 보호자라는 것밖에. 왜 보호자가 니가 아니야?”
비교적 대답이 쉬운 질문이다. 현우는 자신이 그녀의 법적보호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비용을 댄 사람이 보호자가 된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럼 박민혁이라는 사람이 그만한 돈을 냈을 땐 원하는 게 있을 거 아니야? 그게 뭔데?”
이번에는 대답이 무척 어려운 질문이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건.
“왜 말을 못해? 그렇게 곤란한 거야?”
=그냥 넌 몰라도 돼. 내가 알아서 할게.
“어떻게 그래? 또 박민혁하고 통화하게 되면 어떡해?”
=연락 오면 응답하지마. 어차피 넌 니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연락할 방법도 없어. 이참에 말하는데 모든 건 나하고 상의해. 그리고 나한테 연락하는 방식은 오늘하고 똑같고. 나도 필요할 때는 이번처럼 집에 메시지 남길 테니까.
지호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지 않았다. 현우가 이렇게 대답을 피한다는 것은 그만큼 곤란하다는 뜻이다.
‘뭘 약속했지?’ 궁금증이 커진다. 그리고 궁금증이 만든 그 큰 공간을 상상력이 채우기 시작했다.
“지현우, 사실대로 말해. 뭘 약속한 거야? 나도 알아야 같이 말을 맞추든가, 아니면 하는 척이라도 할 거 아니야?”
어디서 이런 대담함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아플 때는 뭐든지 현우가 하자는 대로 했지 자기 의견을 고집한 적이 없다. 그 결과 포에버월드에 오기도 했고. 그러나 지금은 변했다. 그녀는 스스로 변한 것을 느꼈다.
반면 지현우는 당황했다.
=별 거 아니야. 니가 알아도 좋을 게 하나 없다고. 그보다 니 상태가 걱정이야. 넌 정상이 아니야.
“정상 아니라니, 그건 또 무슨 얘기야?”
=걱정할 정도는 아닌데, 넌 다른 거주민과 달라. 시스템에서 위치추적이 안 돼. 그래서 니가 사라지면 우리가 찾을 수 없어. 그러니까 너 스스로 조심해야 해. 무슨 일 생겨도 내가 먼저 도와줄 방법이 없으니까.
“에러 같은 거구나. 살아서도 불량이더니 여기 와서도 에러라니.. 알았어.”
=너무 걱정은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나 길게 통화할 수 없어. 오늘은 여기서 끊고 다시 연락해.
전화가 끊겼다. 얼굴은 보지 못하고 목소리만 듣다가 끝났다. 현우는 뭐가 급한 것인지 서둘러 연결을 끊었다. 보고 싶다고, 잠깐 오라고 하면, 곧 문 열고 들어올 것 같은데 실제 현우와 그녀 사이에는 넘어갈 수 없는 벽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벽. 그녀는 죽었고 현우는 살아있다. 전화로 연결된다고 해서 같은 공간에 있지 않다. 시간은 같이 흘러도 공유할 수는 없다.
그를 만날 수 없다 생각하니 비로소 죽었다는 게 실감났다. 동시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늘과 바람, 솜사탕 맛이 나는 공기와 시리도록 푸른 강물,
‘이것이 살아있는 게 아니면 난 뭘까?’
지현우가 퇴근하는 길, 주차장에서 후진으로 차를 빼내 방향을 바꾸고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 박민혁의 차가 급하게 나타나서 앞을 가로막았다.
“차는 거기 두고 내 차로 가지?”
오늘쯤은 나타날 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거칠었다.
“어딘지 알려주시죠. 내 차로 가겠습니다.”
그러나 박민혁은 비키지 않았다.
“요즘 참 말 안 들어. 동생이 형 말을 잘 들어야지. 안 그래? 안 그럼 형이 화낼 거 같은데.”
내리라는 협박이다. 지현우는 차를 주차하고 박민혁의 차로 옮겨 탔다. 그가 타자마자 차는 큰 엔진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얘기는 잘 됐어?”
“무슨 얘기요?”
지호에게 박장우 얘기를 했냐고 묻는 거지만 일단 모른 척. 그랬더니 차가 급정거나 마찬가지로 정지했다.
“자꾸 이럴래?”
박민혁이 화낸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 일단 화 낼 거 내고 나면 그 다음 얘기가 쉬우니까 놔두기로 했다.
“아직 못 찾았고 그래서 연결 못 했어요. 연결이 돼야 말을 하든 하죠.”
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박민혁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못 찾았다면서 왜 이리 태평해? 며칠 전만 해도 자식 잃어버린 것처럼 오두방정을 떨더니.”
“저라고 맨날 걱정합니까? 곧 연락되겠죠. 메모 남겨놨습니다.”
이런 거짓말이 통할까, 했는데 박민혁이 조금 차분해진다.
“그래 뭐, 내가 닥달한다고 빨리 되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건 일이 되게 하는 거니까. 자신 있는 거지?”
“그 여자도 원하는 게 있을 테니, 원하는 거 해준다고 하고 잘 구슬리면 될 것 같은데요.”
지호를 ‘그 여자’라 칭하면서 현우는 그녀가 멀어진 것을 느꼈다. 민혁을 속이려고 하는 말이라 해도 완전히 남인양 말하는 건 쉽지 않다.
“당연하지. 우리가 원하는 거 안 해주면 그냥 계약종료라고 말해 버려. 사실 뭐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노인네한테 듣기 좋은 말 좀 해주고 손도 좀 잡아주고 살살 꼬셔서.”
지호가 박장우에게 접근해서 아양 떠는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 안 된다. 상상하기도 더럽다.
“늦어도 다음 주까지는 그 여자에게 전달해. 안 그럼 내가 보호자 자격으로 나설 수밖에 없어. 이제 내려.”
박민혁은 일방적으로 통보하더니 현우를 차에서 내리게 했다. 그리고 시끄러운 배기음과 같이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털 컴퍼니 클리닉에서 대략 4~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다. 현우는 주차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일이 꼬였다. 어떻게든 지호의 보호자로 자신의 이름을 올렸어야 했다. 그때는 너무 급하기도 했고 자신이 기술팀장이니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했지만 안이한 생각이었다. 컴퍼니의 관리지침이 엄격해서 보호자 동의 없이는 지호의 F머니를 채우는 것도 불가능했다. 하물며 박민혁이 계약을 조기종료하겠다고 고집하면? 끔찍하다.
차라리 모든 걸 실토하고 지호의 비용을 자신이 대겠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규정상 보호자 교체 자체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돈도 돈이지만 박민혁이 가만 있을까? 재력을 동원해서 지호나 그에게 무슨 해를 끼칠지 모른다.
지현우의 발걸음이 더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