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당신 정도면 AI라도 사귀겠어

by 시sy

포에버월드의 레스토랑에 처음 와본 지호는 모든 게 신기했다. 불 켜진 샹들리에는 실제와 매우 유사해서 현실세계와 구분되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천장 텍스쳐는 애니매이션 영화 같은 느낌이었다. 유리창으로 들이치는 자연조명도 인위적인 느낌이 나고, 실내의 커다란 공간은 현실감이 떨어진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네요.”


지호가 어색함을 나타내자 박장우는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다 좀 이상해요. 하지만 이 짓도 계속 하다보면 익숙해집니다. 꼭 가상현실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입니다.”


메뉴판을 들었다. 메뉴를 한 장씩 넘기는데 기분 탓인지 넘기는 손동작과 넘어가는 종이가 딱딱 들어맞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넘겼다가 다시 앞으로 가길 몇 번 반복하다보니 그제야 좀 비슷하다.


“벌써 요령을 알았네요. 그렇게 연습하다보면 이상한 느낌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


박장우는 자기 머리를 가리켰다.


“정확히 여기 머리가 있지는 않겠지만, 흐흐, 여기가 무뎌져요. 그러면 적응 끝입니다. 뭐 먹어 볼래요?”


처음 만났는데 친절하다. 윤지호는 박장우가 맘에 들었다.


“시후씨, 아니면 여기 선배님이니까 선배님이라고 부를까요?”


박장우는 고민했다. 뭐라고 불러 달라 할까?


“시후씨가 좋겠습니다.”

“그럼 시후씨가 추천해줘요. 전 좀 어리둥절해서 뭘 먹어봐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솔직히 살아있을 때도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뭐가 맛있었는지도 잘..”


박장우는 윤지호에게 사정을 캐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앞으로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좋습니다. 그럼 파스타 같은 건 어때요? 음식 맛이 기억납니까?”


베이컨이 곁들어진 크림소스 파스타, 선명한 이미지가 떠오르며 식욕이 생기는 것 같다.


“맛있을 거 같아요. 까르보나라 같은 것도 있을까요?”

“당연히 있죠.”


박장우는 AI종업원을 불러 점잖게 파스타 2인분과 샐러드, 조그만 피자를 주문했다.


“노하우를 좀 알려드릴까?”

“무슨 노하우요?”


“음식 맛을 제대로 느끼는 노하우.”

“좋아요.”


“생전에 먹어봤던 음식을 고르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맛을 상상하며 먹어야 해요. 그러면 더 비슷한 맛이 납니다. 내가 컴퓨터를 잘 모르지만, 여기 시스템은 우리 두뇌에 기억된 감각을 그대로 끌어다 쓰는 것 같거든요.”

“아.. 그러면 안 먹어본 것을 먹으면 느낌이 어떤데요?”


살아있을 때 박장우가 안 먹어본 음식이란, 식성에 안 맞아서 안 먹은 것밖에 없다. 돈은 문제가 안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지호 앞에서 돈이 많다는 자랑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얘기가 통하는 ‘진짜 사람’이고, 포에버월드에서 처음이나 다름없는 젊은 여자였으며, 지루했던 그의 일상에 좋은 변화를 가져다줄 귀중한 인연이었으니까.


“맛이 다 비슷합니다. 짜고 맵고 달고 대충 섞어놓은 느낌. 많이 궁금하면 다음에 왔을 때는 안 먹어본 음식을 먹어 봅시다. 나도 또 궁금해지네요.”

“또 같이 오시게요?”


지호가 박장우를 또렷이 쳐다봤다. 박장우는 조금 당황했다.


“여기가 생각보다 좁아요. 오다가다 만날 수도 있고, 뭐 우리가 친구가 되지 말란 법은 없는 거 아니요?”


‘친구’라는 말이 나오자 지호는 지현우를 떠올렸다. 지금쯤 그는 그녀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깨어나면 알아서 연락할 거라고 했는데 현우의 연락은 없었다. ‘집에서 전화 같은 걸 기다렸어야 했나?’ 모르겠다. 포에버월드까지 와서 그런 것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


“친구? 우리, 친구가 되는 건가요?”

“그쪽만 좋다면요. 내말은 윤지호씨가 좋다면 나 박시후는 친구가 될 생각이 있습니다.”

“어머 AI처럼 말하네요. 진짜 AI 아닌 거죠? 호호.”


윤지호의 농담에 박장우가 웃었다. 지호는 자신이 타인을 웃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워졌다. 늘 몸이 무겁고, 머리가 아파서 남의 기분은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육체를 버리고 의식만 컴퓨터에 전송되고 나니 홀가분해서 오히려 살 것 같다. 살아있는 느낌이며, 그 느낌이 유쾌하다. 어쩌면 그녀는 의식전송과정에서 변한 것일까? 뭐가? 의식이? 아니면 영혼이?


지호의 농담에 박장우의 얼굴이 빨개졌다. 당황해서 빨개진 건지 부끄러워서 빨개진 건지 자신도 모르겠다.


“농담이에요. 농담. AI가 시후씨 정도라면 AI랑도 사귀겠네.”

“그 말 진심이요?”


“당연히 진심이죠. 그럼 내가 진짜 시후씨가 AI라고 생각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거 말고. AI랑 사귀겠다는 부분이요. 그러니까 그..”


박장우의 얼굴이 진짜로 빨개졌다. 이번에는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는 부끄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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