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읽히지 못할 소설

by 시sy

박장우는 윤지호와 처음 만난 날부터 그녀 생각만 했다. 그녀에 대해 좀 더 묻지 못한 게 후회됐고 다음 만날 약속을 하지 않은 것도 자책했다.

먼저 연락할 방법이 없다. 주소도 모른다. 콜센터에 전화해서 문의했더니 개인정보보호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댄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면 거주민 마다 인식표처럼 붙여놓은 위치코드는 뭔가? 지들 필요할 때는 아무렇게나 부르고 들여다보면서.


유일하게 아는 건, 그녀와 헤어질 때 그녀가 가리켰던 방향이다.


“제 집은 저쪽이에요. 강이 보이는 단층건물이구요, 조그만 정원이 있어요. 일어나자마자 나왔기 때문에 전화번호는 몰라요. 시후씨 말대로 여긴 좁은 곳이니 곧 만나지 않을까요?”


그렇게 희미하게 웃으며 자신이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왜 쫓아가지 않았을까? 자연스럽게 데려다줄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이리 그리워질 것을 예상 못 했나?


반평생을 남을 내려다보며 살았다. 주소든 전화번호든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 필요한 사람이 먼저 묻는 것이고, 박장우는 필요하지 않았다. 또 알아내려하면 언제든 알아낼 수 있었다.

지금도 그건 할 수 있다. 지현우 기술팀장이나 아들 박민혁에게 연락하면 어떻게든 찾아줄 것이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 다 늦게 죽은 뒤에야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났으니 연결해달라고? 그건 못한다.


길을 떠났다. 그녀가 가리키고 사라진 방향으로 강을 따라 걸었다. 남는 게 시간이고 지칠 육체도 없다. 대책 없고 단순한 방법이지만 하나씩 두드리다 보면 나올 것이다. 운이 좋아 그녀가 산책을 또 나온다면 더 쉽게 만날 것이다. 박장우에게 희망이 생겼다.


하루에 20시간씩 그녀를 찾아 거주지를 헤맸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문을 두드리기도 했고 얕은 담장 너머로 엿보기도 했다. 게다가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거 말이요. 키는 이 정도고, 얼굴은 하얗고,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로 젊은 여자가 혼자 사는 집 아시오?”

“그런 여자가 우리 동네에 있나? 왜 그러슈? 아는 사람이라도 새로 입주했어? 그럼 전화하지 왜 찾아다녀?”


답답한 영혼들, 그러니까 니들은 죽어서도 이 꼴로 살지. 이 가상공간에 그녀 하나를 빼면 전부 쓸모없이 느껴진다. 이것들이 다 없다면 훨씬 찾기 쉬울 텐데.


나흘째 되던 날 그녀를 찾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박장우를 찾았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그를 지나쳐가다가 되돌아와서 싱그러운 미소를 선물했다. 햇빛이 그녀의 머리 뒤로 내려쬐며 하늘거리는 모자의 검은 실루엣을 코까지 드리웠다. 때문에 그녀의 미소는 입술뿐이었다.


“여기서 뭐해요?”


아무 의미 없이 던지는 지호의 인사말에 박장우는 지나치게 솔직하게 답했다.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그녀가 또 웃는다.


“그럼 성공하셨네요. 그럼 이제 뭐 할 건가요?”


말문이 막힌다. 찾아서 만난 다음에 뭘 할 건지 계획하지 않았다.


“그게...”

“계획은 없으시네요. 그럼 다음에 오실래요?”

“아닙니다.”


다음에 올 계획은 없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줘요.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 집이나 문을 두드렸는지 알면 놀랄 겁니다.”

“진짜요? 몇 집이나 돼요?”

“저기부터 저기까지 전부 다.”


박장우가 가리킨 곳으로 마침 노을이 지고 있다.


“여기도 노을이 지네요. 처음 봐요.”

“저걸 처음 본다구요. 여기는 언제나 완벽한 노을이 지는데. 그동안 뭐했습니까?”


“저요? 글 썼어요.”

“다른 건 안 하고 오직 글만?”


“네. 포에버월드가 글쓰기에 완벽한 조건이더라구요.”

“작가 선생이구만?”


“작가 선생? 시후씨는 나이가 몇인데 그런 말투를 쓰는 거에요?”


외모는 바뀌었지만 말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더군다나 누굴 깔보고 하대하는 습관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는다.


“비밀입니다. 꼭 알아야겠습니까?”

“아뇨. 이곳까지 온 마당에 그게 뭐 중요하겠어요. 대신 나도 비밀은 말해주지 않을 거에요.”

“좋습니다. 그런데 무슨 글을 쓰고 있습니까?”


책 읽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작가라고 하니 호기심이 배는 커진 것 같았다.


“소설인데, 잘 안 써지네요.”

“쓴 걸 내가 좀 볼 수 있습니까?”


소설 읽기를 빙자해 박장우는 윤지호의 집에 들어오는 것에 성공했다.


“여기 전화기 있네. 옆에 있는 이 번호가 여기 번호입니다. 이건 내 번호고.”


박장우는 윤지호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자기 번호를 메모지에 적어 건넸다.


“혼자 있다 보면 나한테 물어 볼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또 뭐냐, 그러니까 내가 전화번호를 준다고 해서 꼭 전화하라는 건 아니요.”


지호는 밝은 표정으로 박장우의 번호를 받았다.


“안 그래도 집에서 뭐 해 먹으려면 어떻게 하는지 몰랐는데.. 딱히 배고픈 건 아니지만 먹는 느낌을 가지고 싶어서.”

“아.. 그거요? 그것도 이 전화로 간단히 해결됩니다. 내가 시범을 보여주죠.”


박장우는 콜센터에 연결해 지금 가능한 메뉴를 묻고 햄버거 세트 2인분을 주문했다.


“좀 있으면 문밖으로 AI가 와서 식사를 배달해 줄 겁니다. 배달음식 시키는 것과 비슷해요. 나도 끼니를 잘 챙겨먹지 않지만 밥이라도 먹지 않으면 너무 지루해서. 또 죽고 나니 밥 먹는 게 시간 때우기로 딱입니다.”

“고마워요. 그냥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시키면 돼요?”

“아. 그건.”


박장우는 멈칫했다. 선택할 수 있는 메뉴는 계약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었다.


“실례지만 계약상품이 어떤 건지 물어도 되겠소? 일단 집과 정원을 보니 중간이상은 되는 것 같은데.”

“계약상품이요? 전 잘 모르는데요.”


윤지호는 그런 게 있냐는 눈으로 쳐다봤다. 박장우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의식전송 전에 다 따져보고 계약하는 거 아닌가? 그럼 몇 년 계약이요? 2년? 5년?”

“그것도 잘... 갑작스럽게 이곳에 오게 돼서.. 꼭 알아야 하나요?”


박장우는 황당했다. 계약상품도 모르고, 심지어 몇 년 계약인지도 모른다니.. 이곳에 그런 거주민은 절대 없다. 다들 의미 없이 빈둥거리며 하루하루 보내다가도 계약기간이 끝나가면 그걸 연장하려고 오만 추한 꼴을 다 보이지 않는가?


“사정이 있나 보군요. 책상서랍 같은데 찾아보면 계약서가 있을 수도 있는데. 안 찾아봤죠?”

“네.”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어떻게 그리 태평합니까? 이곳 생활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박장우는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로 윤지호를 쳐다봤다. 그녀는 꿈꾸는 것 같은 표정으로 답했다.


“저는 소설 다 쓸 때까지만 있으면 돼요. 그리고 언제 죽는지 모르는 건 살아있을 때도 마찬가지고. 오히려 그걸 알면 더 힘들 거 같은데. 아닌가요?”


박장우는 말문이 막혔다.


“그... 보여주기로 한 소설 좀 봅시다.”


지호는 망설였다.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은 글을 보여준 적은 없다. 하지만 그건 살아있을 때 얘기다. 지금은 소설을 완성해도 독자가 있다는 보장이 없다.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는 소설만큼 막막한 게 있을까?

노트북을 켠 채 박장우에게 넘겼다.


박장우는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독서라고 해도 출판된 책을 읽은 적 있지만 작가가 방금 쓴 초고를 읽기는 처음이다.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은 나쁜 짓인지 알면서도 죄업의 문턱을 넘고 있었다.


‘이곳은 아직 지옥이 아니다. 색욕, 폭식, 탐욕, 분노의 지옥을 지나 스틱스강을 건너면 거대한 장벽에 둘러싸인 진짜 지옥이 나온다. 돌아가려면 지금 돌아가야 한다’


죄가 죄인 것을 인식한 순간 진짜 지옥경이 펼쳐진다는 것일까.. 소설에 푹 빠진 박장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트북 속 다른 세계에 빠져들었고, 윤지호는 그 모습을 흥미롭게 보면서 콜센터에 주문했던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그녀의 병 때문에 살아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프렌치프라이를 손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바사삭 부서지는 감자튀김의 식감과 달콤함과 고소함이 동시에 입안에 퍼졌다. 먹어본지 몇 년은 됐을 텐데, 시스템의 인공지능이 묻혀있던 감각의 기억을 끄집어내 지호에게 탐식의 미학을 일깨웠다.


지호가 자신의 프렌치프라이를 다 먹고 정원에 나가 한 바퀴 돌고 올 때까지 박장우는 꼼짝도 않고 소설을 읽었다.


“여기가 끝이요?”


상기된 얼굴로 묻는다.


“재밌어요?”

“이 뒤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도 모르죠.”

“작가가 모르면 누가 알아요?”


“글쎄요. 하느님?”

“놀리지 마쇼.”


“진짜에요. 저도 몰라요. 모르니까 더 못 쓰고 멈췄죠.”

“거참. 다 쓸 때까지 옆에서 볼 수도 없고. 작가는 참 대단합니다. 이런 걸 쓸 수 있다니.”


박장우는 진심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기작가나 그렇죠. 저 같은 작가는 그냥.. 제대로 읽히지도 못하고 죽었는걸요. 내 소설하고 같이.”


조금 우울해진다.


“하지만 괜찮아요. 이제 그런 건 상관없게 됐으니까. 그냥 소설이나 완성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절대 다 못 쓸 줄 알았는데, 포에버월드에 와서 글을 쓰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이것만 해도 대단한 행운 아닐까요?”


지호는 슬프게 웃었다. 박장우도 우울해졌다.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내가 지호씨를 스타작가로 만들어줬을 수도 있었을 텐데.”


박장우는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아니오. 혼잣말입니다.”


“들었어요.”

“그럼 왜 묻습니까?”


“진심인 것 같아서요.”

“진심이었소. 늦었지만.”


“모두 늦었네요. 지금 새벽 4시인 거 알아요? 여기가 현실세계였으면.. 남녀가 새벽까지 한 집에서.. 호호.”


지호의 농담을 깨닫고 박장우가 얼굴을 붉혔다. 나이 70이 되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힌다. 역시 노화는 시간이 아니라 육체와 함께 오는 것이다. 영혼은 늙지 않는다. 소멸할 뿐.


“아이고, 실례 많았습니다. 나는 가보겠습니다.”

“그러세요.”


“너무 가라고 등 떠미는 거 아니요?”

“그럼 가지 마세요.”


“아닙니다. 이제 집도 알았으니 또 올 겁니다. 그 뒤를 읽어야 하니..”

“그러세요. 호호.”


남의 집을 떠나면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박장우는 조금도 피로하지 않았다. 실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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