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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Aug 19. 2019

멸치스테이크의 추억

어릴 적 나는 부끄러움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시장에서 산 나이키 짝퉁 ‘나이킹’ 운동화를 신고 다녀도 아무렇지 않았고 촌스런 아버지의 남방을 대학 때까지 거침없이 입고 다녔다. 

즐거운 점심시간, 지금과 달리 그때는 끼리끼리 모여앉아 각자 집에서 싸온 도시락 반찬을 공유하며 점심을 먹었다. 친구 넷이 모이면 반찬의 종류는 십여 가지가 되었고 일종의 뷔페 스타일이 된다고 할까? 당연히 누구의 도시락 반찬이 훌륭한지 비교하게 되고 우열은 쉽게 가려졌다. 

같은 계란말이를 가져와도 누구는 각종 야채와 햄이 송송 들어간 호텔 오믈렛 같은 계란말이를 싸오고 누구는 흰자와 노른자가 완전히 구분된 달걀 프라이를 두 번 접기만 한 ‘순수한’ 형태의 계란말이를 들고 온다. 

멸치볶음도 마찬가지, 자글자글한 볶음용 멸치에 땅콩이나 아몬드 가루를 버무리고 엿당을 아낌없이 부어넣어 바삭하게 볶아온 멸치가 있는 반면, 누구는 손가락만한 국멸치를 고추장에 버무리고 대충 프라이팬에 데워 오고는 멸치볶음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눈치 챘겠지만, 뒤에 나오는 부끄럼 없는 ‘누구’가 나였다. 

다행히 당시 내 도시락 친구들은 공자(孔子)급으로 성격이 훌륭했다. 김치를 제대로 썰지 않아 집어 들면 배추 한겹이 통째로 올라오기 일수인 내 도시락 반찬을 비난하기는커녕, 킥킥 웃으며 상당히 재밌어했다. 그러다 우리 도시락팀이 새로운 멤버를 영입했는데, 그 녀석은 내 도시락 반찬을 보고 기겁했다. 

“헉, 멸치볶음이 왜 이래? 이게 멸치 맞아? 생선 아니야?”

그러자 내가 부끄러워할 틈도 없이 내 옆에 있던 친구 녀석이 내 반찬통에서 멸치 한 마리를 낚시하듯 젓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짜식, 이것도 다 먹는 방법이 있어. 이렇게 머리를 자르고, 반으로 갈라. 그러면 뼈다귀가 나오지? 이걸 발라내고 살만 먹으면 돼. 이른바 멸치 스테이크다 임마. 촌스럽긴.”

황당해하는 새로운 멤버 앞에서 내 친구들은 좋다고 웃어대며 각자 멸치스테이크를 자른다면서 포크와 숟가락으로 도시락 뚜껑 위의 우리집 멸치를 해부했다. 좋은 녀석들. 


생각해보면 당시 나는 국멸치와 볶음멸치가 엄연히 구분돼 있다는 개념조차 없었다. 그나마 마지막 자존심은 있었기에 호텔 오믈렛급 친구의 계란말이를 먹지 않고 집에서 싸온 오리지널 계란말이를 먼저 해치웠다. 

그래도 김치를 썰지도 않고 통으로 반찬통에 집어넣은 엄마에 항의했던 기억은 난다. 

“엄마, 애들이 우리집 김치 보고 배추래.”

“누가 그래? 그거 찢어먹어야 맛있기 때문에 그냥 넣어준 건데.”

당시 뒤늦게 박사과정에 들어가 공부하랴 글쓰랴 바빴던 엄마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항변했다. 더 항의했다가는 그나마도 못 얻어먹겠다는 '바른' 생각으로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지만 ‘멸치 스테이크’ 사태는 도시락 반찬이 부끄러울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내게 가져왔다. 


돌이켜 보면 우리 엄마만의 독특한 레시피를 가진 음식은 꽤 있었던 것 같다. 유부를 대각선으로 자르지 않고 허리를 동강내 직사각형으로 만든 뒤, 반공기 정도의 밥을 때려 넣어 두 개만 먹으면 배가 부르고 마는 특대형 유부초밥. 곧 터질 듯 부푼 네모난 유부초밥 6개만 싸면 1회용 은박 도시락통은 금세 가득 찼다. 

남들은 뻔한 김밥을 싸올 때 난 유부초밥이라며 자랑스럽게 소풍에 싸갔던 그 유부초밥이 사실은 초박막 유부를 뒤집어쓴 주먹밥이었다는 사실은 직장에 취직하고 정식 유부초밥을 시켜보고서야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됐다. 

‘유부초밥은 원래 고깔처럼 생겼구나. 유부가 이렇게 통통하다니.’


더울 때 대충 갈아먹으면 팥빙수가 된다며 얼려준 팥, 우유, 혼합 얼음덩어리. 믹서에 넣어 갈 수도 없고 칼로 슬라이스를 칠 수도 없어 2년간 냉동실을 차지하다가 결국 음식물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이 모든 진실을 마주하고도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난 어머니에게 고백했다. 그때 부끄러웠다고. 좀 창피했다고. 하지만 어머니의 반응은 예측을 완전히 뒤집었다. 

“내가 언제 그랬어? 그 바쁜 와중에 너네들 도시락 반찬에 얼마나 신경 썼는데.”

정말 억울했는지 어머니는 글썽글썽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기억은 편의적으로 왜곡되고 편집되는 것이니 누구의 증언이 올바른지 따질 생각은 전혀 없다. 성공한 커리어 우먼으로서 그 정도면 어머니의 음식솜씨는 상당히 좋은 편에 속했고 간도 딱딱 맞았다. 인정할 건 인정한다. 그래도 멸치 스테이크 사건을 내가 왜곡했다는 말인가? 


다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그래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나는 왜 처음부터 부끄럽지 않았을까? 지금도 나쁜 성격이 그때는 좋았을 리 없고, 불편할 정도로 예민한 내가 그때라고 무감각하지도 않았을 텐데, 정말 부끄러움이 없었던 걸까?

짐작컨대 당시 나는 대부분의 멋에 둔감했던 것 같다. 음식은 대충 먹을만 하고 배부르면 끝. 옷은 더럽지 않고 편하면 끝. 다른 어떤 것에 집중해 있을 때여서 그런지 유독 ‘멋’에는 관대했던 것이다. 

지금 나는 어떤가? 음식에 그만큼 관대한가? 대답하지 않겠다. 다만, 나이가 든다고 해서 더 관대해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사진출처: 먹깨비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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