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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Aug 22. 2019

아메리카노와 롱블랙의 차이, 진짜 아세요?

커피를 내리는 방법은 하늘의 별만큼 많지 않아도 태양계의 행성 숫자보다는 많다. 가장 일반적인 에스프레소와 드립커피 외에도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콜드 브루, 집에서 만들어 먹기 쉬운 프렌치 프레스, 한약 달이듯 끓이는 터키 커피, 화학실험을 연상케 하는 에어로프레스와 진공흡입식 커피, 이 밖에도 알코올 인퓨전, 퍼컬레이터, 베트남 핀 커피 등등등.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새로운 방식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 가운데 아메리카노와 롱블랙은 둘 다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만드는 비교적 공정이 간단한 커피다. 공통점은 에스프레소 샷과 뜨거운 물로 만든다는 것. 차이점은 잔에 붓는 순서. 여기서 끝, 이라고 생각하면 커피의 마성에 덜 심취한 사람이다. 진짜 중요한 차이는 지금부터 나온다.     


어쩌면 붓는 순서보다 중요한 차이는 뜨거운 물의 양이다. 일반적으로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 더블샷(2온즈)에 10온즈 이상의 물을 섞기 때문에 에스프레소와 물의 비율이 1대5 정도이고, 롱블랙은 4온즈 잔을 사용해 1대2가 된다. 롱블랙에서 아메리카노 보다 더 진한 커피맛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커피원액의 비중 때문이다.      


아직 더 남았다. 섞는 물의 양이 다르다는 것은 커피잔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이고 잔의 크기는 모양까지 바꾼다. 아메리카노는 물의 양이 많기 때문에 주로 머그잔이나 1회용 종이컵에 커피를 마시지만 롱블랙은 양이 적어 플랫화이트잔이나 튤립잔의 사용이 가능하다. 잔이 입술에 닿는 느낌이나 한번에 들어가는 커피양, 그리고 커피가 혀와 맞닿는 부위, 모두 달라지는 것은 잔의 모양에 달려있다. 


바쁜 출근길에 들고 가면서 플라스틱 뚜껑에 난 좁은 틈으로 커피를 흡입하는 것과 촉촉한 튤립잔을 기울이며 자연스럽게 입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것, 맛의 차이가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아메리카노는 1773년 보스턴 차 사건 이후 미국 사람들이 홍차 대신 진한 커피에 물을 타 마시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때문에 2차 대전 직후 미국군이 이탈리아에 점령군으로 들어갔을 때, 촌스럽게도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희석해 달라고 주문했는데 이를 두고 이탈리아 바리스타는 아메리카 사람을 뜻하는 '아메리카노'라는 새로운 메뉴를 만들었다고.      


재미없는 이야기다. 이 보다는 다음 상황을 설정해 보자. 유럽에서 유학을 마치고 고향 시애틀로 돌아온 미국인이 있다. 그에게 커피란 공부할 때 잠 깨기 위해 흡입하는 블랙워터에 불과했다. 20달러 짜리 커피메이트에 분쇄한 원두가루를 넣고 기다리면, 언제 갈아 꼈는지도  알 수 없는 여과지를 통과해 적당히 까만물이 우려져 나온다. 원두는 얼마나 신선한지, 물의 양이나 온도는 어떤지 전혀 상관없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대학을 다니다 보니 에스프레소 혹은 룽고라 불리는 향기로운 진액이 서빙 돼 나왔다. 단정한 흰 셔츠에 갈색 머리, 친절한 미소를 가진 여자 종업원은 조그맣고 하얀 잔에 잔 받침까지 있는 커피를 가볍게 내려놓으며 ‘카페’라고 말했다. 하늘은 파랗고, 광장은 시원하며 커피향은 형언할 수 없는 고소한 향기를 풍겼다. 


고향에 돌아와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은 푸근함이 들었지만 그는 뭔가 부족하고 허전한 것을 느꼈다. 좋은 직장, 유머러스한 동료, 다른 건 다 괜찮은데 한가지만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사무실 한켠에 놓여있는 저 기괴한 물체는 무엇인가? 늘 미적지근하고 검기만한  액체를 가득 담고 있는데 마셔보면 우롱차도 아닌 것이 찝찔하고 씁쓸한 맛이 난다. 


마침내 그는 제대로 된 커피를 찾아 시내를 해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1912번지에 도착 , 그럴싸해 보이는 커피집을 찾았다. 그곳에는 0.99달러 내고 아무렇게나 따라 마시는 드립커피 대신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이 커피 주문을 받았고 좁은 매장이지만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신문과 잡지가 배치돼 있었다. 커피값은 3배나 비싸지만 초록색 세이렌 로고가 새겨진 깔끔한 머그잔에 입을 댄 순간, 진한 커피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머릿속에는 유럽의 파란 하늘이 떠올랐다. 스타벅스 1호점이다.      


혹자는 이렇게 투덜거린다. 유럽에 가면 허물어져 가는 시골 카페에서도 풍미 가득한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이 많은 커피전문점은 다 뭐하는 거냐고. 


에스프레소는 공식이다. 원두 50알을 분쇄한 7그램의 커피가루를 9기압 90도에서 30초간 추출하면 대략 1온즈 가량의 에스프레소 한잔을 얻을 수 있다. 누가 어떤 머신을 이용해 어떻게 뽑았느냐에 따라 전문가들의 입맛에는 천차만별의 차이가 나겠지만, 일반인들에게야 대충 신선한 원두에 공식만 맞추면 먹을 만한 커피가 된다.

 

그런데도 곳에 따라, 때에 따라 커피 맛에 큰 차이가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내가 아는 유명 바리스타가 말했다.

 ‘커피는 어떤 커피를 마시느냐 보다 누구와 어떤 곳에서 마시느냐가 중요하다’고. 

그렇다. 요즘 서울에서 제대로 만든 커피 한잔을 찾아 마시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코끝을 자극하며 혀에 확 감기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삶이 고달프고 추억할 것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는 9기압 90도에서 추출한 까만물을 마시는 게 아니라 추억과 감성을 마시는 것이다. 

 

사진출처: 김Sky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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