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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Aug 21. 2019

왜, 끔찍하더라도 삶을 살아야 할까?

이번 생(生)과 똑같이 한번 더 살아야 한다면 그래도 삶을 선택할 것인가? 

이 같은 질문에 마주하고 나면 우선은 자기 삶을 빠르게 돌이켜 볼 것이다. 좋았는지 나빴는지, 또는 지금 좋은지 나쁜지. 그리고 제법 괜찮다고 생각 되면 ‘오케이’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싫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철학자 니체에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몇 번이고 좋다. 생(生)이여 다시 한번!”     


니체같이 훌륭한 철학자로 산다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의 인생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니체는 평생을 유전병에 시달리며 살았다. 혈액이 과도하게 뇌에 몰리는 탓에 머리를 벌레가 파먹는 것 같은 두통에 시달렸는데, 말년에는 머리가 너무 아파 하루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 반정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니체는 ‘철학자로 할 수 있는 최고의 본보기를 보이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위대해질 수 있는 공식은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운명을 사랑하면 어떤 것도 소유하려 하지 않고, 앞으로 뒤로 영원으로도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여기서 그 유명한 말,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가 나온다.   

   

그렇다면 왜? 왜, 끔찍하더라도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국내에는 컨택트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영화 <Arrival, 2016>을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들은 인류와 대화를 시도하는데 서로 화법이 달라 도저히 소통할 수 없었다. 그러다 뛰어난 언어학자 루이스는 외계인들은 시간에 대한 개념이 다를 수 있다고 가정하고 그림으로 소통을 시도한다. 외계인의 문자는 허공에 동그란 모양으로 뿌려지는데 시작과 끝이 없고 동시에 뜻을 나타냈다. 그리고 밝혀지는 놀라운 진실. 

<Arrival, 2016>  외계인의 원형문장

외계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모든 기억을 머리에 가지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살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인생을 답습하는 삶, 그들에게 운명은 인생 그 자체였다. 

루이스는 외계인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능력이 전이돼 자꾸 미래의 일을 단편적으로 떠올리게 되는데, 사랑하는 딸을 잃고 남편과 이혼하는 아픈 인생이다. 있지도 않은 딸, 얼굴도 모르는 남편, 알고 보니 미래의 남편은 함께 일하는 동료 과학자 이안이었다. 

이 남자를 사랑하고, 이 남자와 결혼하면 그녀는 불치병으로 딸을 잃고 남편과 이혼하는 게 운명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도 이안을 사랑할 것인가? 운명은 그녀에게 말한다. ‘그만두려면 지금 그만 두라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루이스는 이안을 사랑하기로 한다. 어차피 그녀가 선택할 건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사랑한 게 선택이 아니듯이, 그를 잃는 것도 선택이 아니다. 너무도 사랑했고 사랑할 딸은 ‘이렇게 될 걸 알면서 왜 낳았냐?’고 그녀를 원망하겠지만 루이스는 어쩔 수 없다. 삶은 그런 것이니까.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맛 봐야 하는 것이니까.      


삶은 삶을 강요하고 있다. Life goes on, 서양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 말은 인생에 대한 희망과 체념을 동시에 담고 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라고, 살아서 겪어야 한다고, 살게 돼 있다고.  

    

‘죽음과 죽음의 정적만이 이 미래에서 유일하게 확실하고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용기는 ‘죽음’마저 죽일 수 있다고 믿었던 니체는 또 이렇게 말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삶에 대해 수백 배 더 생각하라고, 그것이 더 가치 있다고.”  

   

그럼에도 왜 살아야 하냐고? 

삶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면 삶이 주는 기쁨과 사랑도 보지 못하니까. 무엇보다 죽는 건 선택이 아니니까.


그림출처: 에곤 쉘레 作 <죽음과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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