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의 지옥입니까?

샤르트르의 '닫힌 방'과 밀튼의 '실낙원'에서

by 시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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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떨어진 세 사람이 있다. 남자 둘, 여자 하나.

지옥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적막하고 평온했다. 산 채로 태워 죽이는 불도 없고, 칼과 가시로 된 산을 맨발로 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흔한 지옥의 간수조차 보이지 않는다. 잔소리 하나 없다는 점에서 이승보다 낫다는 생각도 좀 했다.


지옥은 그저 닫힌 방이었다. 나갈 수 없는 밀실에 세 사람은 우두커니 앉아 있다. 조금 어둡고 너무 텅 비어서 서로 대화하는 것 외에는 할 게 없다는 게 유일한 불편함이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훌륭하다. 명색이 지옥인데 심심하게 만들어서 죽일 셈인가? 슬며시 헛웃음이 난다.

'나의 지옥이 이것뿐이라면, 나 혹시 착하게 살았던 것 아닐까?'


다른 두 사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행정착오이거나 지옥에 도착하기 전에 잠시 머무르는 중간 기착지가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얼마나 있어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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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트르가 소개한 지옥은 이런 식이다. 아무도 지옥을 가 보지 못했고 갔던 사람은 돌아오지 못했으니 지옥을 어떻게 묘사해도 틀렸다고 할 방법은 없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난 샤르트르의 지옥이 상당히 그 취지에 근접했다고 생각한다. 꼭 지지고 볶고 줘 패야 지옥일까? 어차피 육신은 없고 영혼뿐인데 물리적 타격이 대단한 고통을 줄 것 같지도 않다.


그러면 뜨거운 물이나 불, 폭력 같이 지옥을 연상시키는 각종 장치 없이 어떻게 지옥으로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까? 샤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Huis Clos)'을 보면 수감자 세 명은 각자가 서로의 지옥이 된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과 판단, 선입관, 오해, 비난 등이 지옥의 고통으로 작동한다.


사회 생활 하면서 타인의 시선이나 판단이 내 안에 감옥을 만드는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나는 마땅히 이래야 하니까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도 그 기대를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을 때,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과 부조화가 정신적 고통을 야기한다.


따라서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했던 샤르트르의 말을 글자 그대로 인용하면 곤란한 처지가 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타인이 지옥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 때문에 왜곡된 자아가 나의 지옥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지옥은 내 안에 있는 것이고 만든 사람도 나다. 타인은 그저 거들었을 뿐이다. 슬램덩크의 왼손처럼.


밀튼의 '실낙원'에서 루시퍼는 이렇게 읊조린다.

"마음은 그 자체로 장소가 되어, 지옥을 천국으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드라마 <가족계획>에서 브레인 해킹의 달인 배두나가 정신지배를 통해 피험자에게 가상의 지옥을 심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드라마 1회 서두에 '실낙원'의 윗구절을 인용했다.


루시퍼는 천국에서 추방돼 지옥으로 떨어졌지만 그가 진정으로 고통받는 이유는 장소 때문이 아니다. 오만과 질투, 자기혐오 같은 내면의 고통이 지옥을 만든다. 심지어 루시퍼는 지옥으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가 떨어진 곳이 지옥이 된 것이다.


미국 드라마 <루시퍼>를 보면 LA로 휴양차 가출한 루시퍼가 자기가 설계한 지옥을 자랑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지옥에 빠진 죄인은 자기 인생의 가장 끔찍한 순간으로 되돌아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벌을 받는다. 잘못된 선택,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선택, 그 당시에는 몰랐던 비극적 결과를 알고 있는 선택, 심지어 원하지 않는데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그 선택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다. 지옥은 나 자신이 내 안에 만드는 것이다. 신이 애써서 건설할 필요도 없다. 인간은 스스로의 지옥을 알아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타인은 아무 잘못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타인과 살면서 잘못 없이 살기는 쉽지 않다.

나도 누군가의 타인이다. 그 말은 나의 시선과 판단이 누군가의 마음에 지옥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당신도 지옥 촉발자가 될 수 있는데 불행히도 주로 가까운 사람에게 그렇다. 당연하지 않은가? 아무 관계없는 모르는 사람을 시선으로 판단하거나 오해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동료나 친구, 최악의 경우 가족이나 연인에게 당신의 시선이 지옥을 만든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말이다.


억울할 수 있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혼자 피해망상에 젖어 지옥에 빠져 들었으니 죄가 없다 할 것이다. 단언하지만 대부분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변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뭐,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아무 짓도 안 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아무 짓도 안 한 것이 죄가 된다. 세상사가 그렇다. 방관죄. 나와 가까운 사람이 지옥을 경험하도록 내버려 둔 죄. 어찌해도 당신은 벗어날 수 없다.


원래 지옥은 일방통행이다. 죄가 아무리 사소해도, 그 죄를 용서받아도 일단 지옥에 발을 디디면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 우선은 지옥에 가지 말자. 그전에 지옥을 만들지 말자. 내 마음은 장소와 같아 지옥이 될 수도 천당이 될 수도 있다는 루시퍼의 독백을 떠올리자. 타인의 시선으로 왜곡된 자아가 만든 지옥. 바로 그 지옥!


하나 더!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자.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 사람을 안다고 속단하지 말자.

그리하여 당신은 그 누구의 지옥도 되지 않기를 바란다. I w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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