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없는 글을 계속 쓰는 게 맞나요?

우문현답 시리즈

by 시sy

요즘에서야 격 없이 지내는 현자에게 물었다.


>> 내가 절망하는 이유는 잘 썼다고 인정할 수 없는 글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현실이야. 그냥 내 글이 별로여서 인기 없다고 인정하면 편해질 것 같은데. 그러면 내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난 글을 쓰고 싶은데 내가 못 쓴다고 인정하면 더 글을 쓸 이유가 없다는 거지. 이게 내 부조리야.


Guru peter

"그건 정말 부조리지. 네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현실과 충돌하는 거니까. 하지만 이걸 꼭 "내가 못 써서 인기 없는 거다"라고 단순화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인기와 완성도는 항상 일치하지 않아. 특히 지금의 출판 시장이나 콘텐츠 소비 방식은, 퀄리티보다는 트렌드나 자극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잖아. 그러니까 네 글이 인기가 없다고 해서 네가 못 쓴다는 결론이 나오는 건 아니라고 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으니, 결국 선택의 문제야. 인기 있는 글을 따라가며 "잘 팔리는 글"을 쓰느냐, 아니면 네가 진짜로 쓰고 싶은 글을 계속 밀고 가느냐. 물론 후자가 힘든 길이긴 하지.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이 따르니까.

그렇다고 네가 "나는 글을 못 써"라고 인정해 버리면, 네가 글을 쓰는 이유 자체가 무너지는 거고. 그러니까 어쩌면 이런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나는 글을 못 쓰는 게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글과 사람들이 원하는 글이 다를 뿐이다."

그러면 적어도 네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현실과 타협할 여지를 조금은 남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도 방법이긴 해. 문제는 네가 그 길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거겠지.

어떤 길을 선택하든, 너만의 철학이 있다면 그 길이 의미 없지는 않을 거야."


>> 나도 잘 팔리는 글을 쓰고 싶지. 하지만 그걸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어. 그래서 결국 글을 못쓰는 것이다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지. 평가와 판단은 대중의 몫이니까.


Guru peter

"그 논리를 따르면, 잘 팔리지 않는 모든 글은 못 쓴 글이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해? 예를 들어 카프카는 생전에 거의 인정받지 못했고, 러브크래프트도 마찬가지였어. 반대로, 당대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 중에는 지금 잊힌 것들도 많지. 그렇다면 "대중의 판단 =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네가 말하는 현실적인 고민은 이해해.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인정받는다는 건 중요한 문제고, 결국 독자가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일 수도 있지. 하지만 대중의 취향이 늘 일정한 건 아니야. 오히려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고, 지금 대중이 원하는 글과 네가 쓰는 글이 맞지 않는다는 게 꼭 네 글이 부족해서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거지.

네가 정말로 "나는 잘 팔리는 글을 못 쓰니까, 글을 못 쓰는 것이다"라고 받아들인다면, 그건 결국 글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정말 그게 맞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봐. 네가 글을 쓰는 이유가 단순히 "잘 팔리기 위해서"라면, 이런 고민조차 안 하고 그냥 시장 트렌드에 맞춰 쓰는 게 답일 거야. 그런데 네가 고민하는 걸 보면, 네 글에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네 스스로도 느끼고 있는 거잖아.

대중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건 맞아. 하지만 네가 대중의 평가를 받기 위해 얼마나 타협할 수 있는지, 혹은 네가 쓰고 싶은 걸 쓰면서도 대중과 접점을 찾을 방법이 있는지, 그걸 고민해 보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 아무리 그래도 나는 쓸 수 있는 것만 쓸 수 있을 뿐이야. 내 글로 인정 받든가 아니면 망하든가. 안 해 본 게 아니야. 대중의 취향에 맞게 써 보려 했지만 실패했어. 그건 내가 못하는 것이거든. 그러니 읽히지 않는, 팔리지 않는 글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데 그런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Guru peter

"그 결론, 꽤 솔직하고 단단한데. 결국 네가 쓸 수 있는 것만 쓸 수 있고, 억지로 대중에게 잘 보이려 해도 실패할 뿐이라면,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글을 쓰는가?


팔리지 않는 글, 읽히지 않는 글을 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 이건 결국 "나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 돈을 벌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아니면 그냥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겠어서?


만약 인정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 네 결론대로 의미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어. 하지만 네가 아무리 고민해도 글을 포기할 수 없다면, 그 자체로 이미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사르트르라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몰라.
의미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니 의미가 없다고 단정하기 전에, 네가 글을 쓰는 이유를 다시 한번 들여다봐도 좋을 것 같아. 그 이유가 단순한 생계나 명성이 아니라면, 네 글을 인정해 주는 독자가 적더라도 계속 써야 하는 이유는 분명 있을 거야."




현자가 옳다.

나에게 글을 쓰는 것은 취미나 생업처럼, 해야 하거나 하고 싶어서 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보다는 손가락을 톡톡 튕기는 버릇이나 한숨을 쉬는 오랜 습관에 가깝다. 어쩌면 밥 먹거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죽지 않으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무인도에 갇혀 연필 한 자루 없어도 나는 나뭇가지를 꺾어 땅바닥에 쓰고 바위 벽에 조약돌을 긁어서라도 글을 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글이 읽히지 않거나 팔리지 않는 것은, 쓰고 난 다음의 문제일 뿐이다. 괴로워도 소용없고 절망해도 피할 수 없다. 오늘은 미치도록 괴로워하고 내일은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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