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시티 라이프: 남자 둘-여자 둘 시트콤
사소한 킬러 8화
캘러한은 김동훈 씨를 대동하고 의뢰인, 즉 개주인을 면담하러 갔습니다.
김동훈 씨가 왜 따라갔냐고요? 사건 현장이 치과니까요. 아무래도 치과의사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죠.
개주인은 50대의 은퇴한 사업가로 무척 소심한 스타일이었습니다.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개가 스케일링을 받던 중에 마취가 깨서 도망쳤다고,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캘러한이 김동훈 씨에게 물었습니다.
“그런 것 같아. 나도 들은 적 있어. 부자들은 반려견도 정기적으로 스케일링을 한다는.. 저기, 선생님, 개 스케일링 비용이 얼마였습니까?”
“마취하고 소독까지 해서 40만 원쯤.. ”
“으헉!”
개주인이 아무렇지 않게 비용을 말하자 김동훈 씨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도 2만 원인데.. 이럴 거면 나도 강아지 스케일링이나 할걸.”
충격이 컸습니다. 김동훈 씨는 강아지 스케일링, 고양이 스케일링, 악어 스케일링 등등 하며 횡설수설, 아무 도움이 안 됐죠. 캘러한은 그런 김동훈 씨를 한심하게 쳐다보더니 개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군견이었으면 훈련이 잘됐을 거 아니야. 그런데 도망을 왜 쳐? 놔두면 돌아오는 거 아니야?”
사해평등,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반말로 지껄여 대는 캘러한의 화법에 은퇴한 사업가는 어리둥절해서 잘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반말로..”
“누구한테 존댓말 하는지 생각하기 귀찮아서. 이 나라 말이야, 나이 많다고 꼭 존댓말 하는 것도 아니더라. 그래서 다 반말로 하기로 했어. 반말이 짧고 평등하고 좋잖아! 아저씨도 반말로 해.”
“그래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계속 존댓말 하든가. 난 상관없어. 강아지 찾고 싶으면 묻는 말에 빨리 대답하는 게 좋아. 안 그러면 그 개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지 모르잖아. 돌아다니다 사람을 물 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잡아 먹힐 수도 있고.”
개주인 사업가는 우물쭈물, 캘러한의 반말 때문인지 아니면 대답하기 곤란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평상시라면 우리 ‘쪼코’가 사람을 물고 하지 않는데..”
“쪼코가 강아지 이름이야?”
“우리 애가 초콜릿처럼 까매서.”
캘러한은 점점 인내심이 바닥 나는 중이었습니다. 스케일링하다가 도망쳤다했을 때부터 이미 기분 상했죠.
“알았어. 이름은 넘어가고, 평상시면 괜찮은데 지금은 뭐가 문제라는 거야?”
“최근에 다이어트를 심하게 시켰더니 무척 예민한 데다가 암예방 약을 먹였더니 히스테리도 생겨서..”
도망친 반려견 걱정에 사업가는 말하면서도 울먹울먹, 눈물이 그렁그렁. 반면 캘러한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참기 위해 인내심을 극상으로 끌어올려야 했습니다.
“사진 보니까 멀쩡하던데 얼마나 뚱뚱하기에 개를 다이어트시켜?”
“그건 옛날 현역 때 사진이고, 은퇴해서 집에만 있으니까 운동부족에, 우리 쪼코가 원래 식탐도 있고. 흑흑! 살이 찌니까 건강검진에서 심장이 안 좋다고 그러고, 위암도 걱정된다고 하고.”
“나도 못하는 건강검진을 정기적으로 개가 받고 있다고?”
결국 뻥 터졌습니다.
“나 못해! 안 해! 이제 보니까 도망친 개가 사람 물까 걱정 돼서 빨리 찾아달라는 게 아니라, 쪼코인지 하는 강아지가 싸돌아다니다가 암에 걸려 죽거나, 심장마비 걸릴까 봐 빨리 찾아달라는 거였어? 내가 아무리 액수만 맞으면 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있다 이거야. 동치과! 시간낭비 그만하고 나가자.”
“그래. 잘 생각했어. 내가 생각해도 이번 의뢰는 아닌 것 같아. 의뢰비 몇 푼이나 준다고. 그 돈으로 강아지 스케일링 한 번이나 하겠어?”
정신을 차린 김동훈 씨와 같이 나가려는데.
“백만 원 드리겠습니다. 그건 착수금이고, 찾으면 백만 원 더!”
캘러한의 귀가 쫑긋했습니다. 돌아나가는 걸음도 급 멈췄죠. 그러~~나,
“강아지 한 마리 찾아주는데 2백씩이나 주겠다고? 내참 어이가 없어서.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 양반아, 세상에는 돈으로 안 되는 것도 있는 거야. 치과 뭐 해? 어서 가자니까!”
돈 앞에 당당한 캘러한을 처음 본 김동훈 씨가 놀라고 있는데.
“오늘 안에 찾아주면 백만 원 보너스로!”
캘러한이 움찔했습니다.
“(뭔가 미적대는 목소리) 그래봐야 3백인데, 사람을 뭘로 보고..”
“안전하게 오늘 안으로 데려오면 합이 5백!”
계속된 돈질에 캘러한의 위선과 참을성이 절단난 순간, 도저히 참지 못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개주인 사업가를 무섭게 노려봤죠.
“5백 콜!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어! 찾아왔더니 의뢰비를 깎아달라 어쩌면 그때는 다 죽는 거야. 가자! 동치과! ”
캘러한의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방향전환에 익숙하지 않은 김동훈 씨는 머뭇댑니다.
“뭐 하고 섰어? 오늘 안에 찾으려면 시간 없다고. 빨리 나와!”
독서실 앞에서 예진이를 기다리던 조안나는 갑자기 쌔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올 시간이 지났는데 예진이가 안 나왔기 때문입니다.
박서우에게 전화합니다.
:: 얼마나 지났는데?
대수롭지 않다는 박서우의 말투.
“20분 정도 됐어.”
:: 겨우 20분 가지고 호들갑은. 더 기다려. 끊어!
“아니야. 얘가 시간 지났는데도 남아서 공부할 스타일이 절대 아니야. 분명 독서실 째고 어디서 놀고 있는 거야. 들어가서 확인해 볼까?”
:: 내가 아는 누구랑 비슷하네. 니 풍부한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보니 신뢰가 간다. 알아서 해. 이딴 일로 자꾸 전화하지 말고!”
조안나는 결국 안내 직원의 만류를 물리치고 독서실에 진입, 예진이가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직원은 변명만 합니다.
“이상하네요. 컴퓨터에는 분명히 착석해 있다고 나오는데.”
“내 이럴 줄…!”
총알같이 독서실 밖으로 튀어나오긴 했지만 예진이가 어디 갔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시 박서우에게 전화.
:: 그러니까 대한민국 경찰한테 겨우 독서실에 탈출한 중딩을 찾아달라 이 말이야?
“응! 난 너밖에 없잖아. 찾아줘. 할 수 있지?”
:: 너 또 전화하면 공무집행방해로 처넣을 거야. 끊어!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에 조안나는 다시 걸었지만 받지 않습니다. 수신차단 당한 듯.
조안나는 큰일 났습니다. 하필이면 오늘이 예진이의 아빠가 돌아오는 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오늘 안에만 데리고 들어가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둘러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원했던 ‘썸’은커녕 후불로 받기로 했던 나머지 보수도 날아갈 판입니다.
“내 이뇬을 잡기만 하면, 며칠 성실히 하는 것 같더니 방심한 틈에 토깠다 이거지?”
전투력이 활활.. 그런데 어디서 찾나요?
중학생이 갈 만한 카페나 분식집을 찾아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는 중, 캘러한을 딱 만났습니다.
“어? 킬러씨! 여기 웬일?”
“그러는 넌, 왜 길 잃은 강아지 마냥 배회하지?”
캘러한은 무척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도망친 ‘쪼코'를 찾아 특별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두 시간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죠.
“누구 보고 강아지래? 그러는 당신은 도사견이야? 눈은 뻘게 가지고 뭘 그리 열심히 찾는데?”
“됐어. 여자는 빠져. 가슴도 작은 게.”
“내 가슴이 어때서? 당신이 봤어? 그래 오늘 잘됐다. 날 잡아! 여기서 끝장 보자. 덤벼!”
캘러한이 다가옵니다.
조안나는 잴 것도 없이 앞차기로 캘러한의 턱을 노렸습니다.
일반인이라면 턱이 나갈 수도 있는 위력이었지만 무슨 상관입니까? 캘러한은 일반인이 아닌데. 자기 입으로 사람 여럿 죽여봤다는 킬러 아닙니까?
킬러면 전문 살인자, 이 정도는 피하겠죠. 못 피하면 디져야죠.
이때 캘러한은 깻잎 한 장 차이로 조안나의 앞차기를 그림처럼 피하더니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녀 옆을 쓰윽 지나갔습니다. 원래 지나가는 사람인 것처럼.
‘뭐지? 피한 건가? 내가 실수한 건가?’
다시 한번 옆을 지나가는 캘러한의 허리를 향해 옆차기, 그러자 캘러한이 휙 돌아섭니다. 그 바람에 옆차기도 빗나갔고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며 조안나가 앞으로 휘청했습니다.
“뭐 해? 야밤에 태권도 연습이야? 어이, 이럴 게 아니라 오늘만 우리 동업할까? 딱 보니 할 일도 없어 보이는데 도망친 강아지 한 마리만 같이 찾자.”
연이은 발차기가 실패한 것도 짜증 나는데 갑자기 핫딜이 들어옵니다. 조안나의 자존심이 땅을 치고 있었죠.
“누가 할 일 없어? 나도 지금 예진이 찾느라 미치겠는데.”
“한예진? 걔 아빠가 A&A 파트너스 다닌다는?”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돈 냄새라도 맡았나 보지. 관심 끄셔. 내 일이니까. 그건 됐고, 킬러라며? 킬러가 겨우 집 나간 강아지를 찾아다녀?”
“원래 프로는 액수만 맞으면 의뢰를 가리지 않아.”
쓸데없이 묵직한 캘러한의 한마디, 조안나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거야 이 바닥 진리지.”
갑자기 공감대 형성. 조안나와 캘러한이 진지한 눈빛을 교환합니다.
“어차피 둘 다 찾아다니는 거 서로 돕는 게 어때? 내가 찾는 강아지는 로트와일러라는 품종인데 대충 이 정도 크기야.”
캘러한이 조안나의 허리춤까지 대충 손을 올리며 사이즈를 말해주자, 조안나가 놀랍니다.
“앉은키가 이렇게 크다고? 게다가 로트와일러면 엄청 싸나운 개 아니야? 딱 봐도 황소만 한데, 호랑이도 물어 죽일 것 같은데 그게 어딜 봐서 강아지야?”
“강아지가 커봤자, 강아지지. 훈련이 잘 돼서 물거나 하지는 않는대.”
사실 자신 없습니다. 그렇다는 거죠.
더구나 급격한 다이어트와 암 예방약 복용으로 요즘 부쩍 예민하다는 말은 뺐습니다. 괜한 말 해서 조안나가 쫄아서 돕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진짜 어이없네. 그렇게 위험한 개가 혼자서 막 돌아다니는데 주인은 뭐 하고.. 그리고 그걸 킬러라는 분이 여태 못 찾았어?"
“그럼 너는 중학생 여자애 하나를 못 찾나? 인간이야 카드도 쓰고, 휴대폰도 있는데 추적하면 금방이지. 하지만 강아지가 전화를 해? 카드를 써? 뭐 단서가 있어야 찾지. 있는 거라고는 이 사진 한 장뿐인데.”
조안나는 캘러한을 째려봤지만 포기했습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으니까요.
“좋아. 싸우는 건 좀 미루고 일단 찾자. 그 강아지 사진은 날 줘. 당신은 외웠을 거니까.”
“외우고 말 게 있나? 강아지가 인상착의가 어딨어? 대충 까맣고 입주위가 갈색이면 되는 거지. 흔한 개도 아니고.. 덩치가 거의 작은 곰만 할 텐데. 그럼 지금이 10시 30분이니까, 흩어졌다가 한 시간 후에 보자.”
“오키토키.”
“잠깐, 한예진, 전화번호 좀 줘봐. 주민번호도 알면 알려주고.”
“왜?”
“알면 좋잖아. 왜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