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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나에게 거짓말을 해줘.

by 시sy

해마다 더위가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요즘 같아선 인류 최대의 발명품은 에어컨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아니다. 혹자는 언어라고 말하고 또 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것도 틀리지 않았다. 대신 정답도 없다.

열에게 물으면 제각각 다른 답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럼 뭘까?

난 거짓말이야 말로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발명품이라 생각한다. 막강한 올림푸스의 신들도 인간의 거짓말에는 맥없이 당했다. 시시푸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거짓말의 대가는 참혹했지만 위력만큼은 입증했다.


태생적으로 사자보다 무력하고 신과 같은 지혜도 없다. 그런 인간이 떵떵거리며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거짓말, 즉 허구의 힘이 아닐까?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렇게 적었다.

"허구를 믿는 능력이 인간을 초월적 존재로 만들었다."


거짓말의 진정한 파워는 거짓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믿을 때 발휘된다.

신이 승리한다는 믿음을 가진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을 무력화한 역사는 셀 수 없이 많다. 중국의 왕은 신이 내렸다고 해서 '천자'라고 불렀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한민족이 원래 곰이었던 여성의 자손이라는 것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신석기시대 끼리끼리 모여 살던 인간의 무리를 국가로 묶어주는 데 신화가 필요했을 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거짓말이 넘쳐난다. 정치인의 말이나 광고는 거론할 것도 없고 모두가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잘 지내?"

"응. 너는?"

"나도 잘 지내."

이 짧은 대화에 진실은 하나도 없다. 잘 지내긴 누가 잘 지내나? 요즘 같은 시절에 잘 지내는 것이 가벼운 인사치레로 건넬 만큼 쉬운 일인가?

종교, 국가, 돈, 기업, 법, 인권.. 하나 같이 물리적 실재가 없는 개념적 허구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기 때문에 현실이 되었다. 다른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있다면 그들에게도 이와 유사한 개념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없다. 드라마 <삼체>를 보라. 처음에 호의적이었던 우주인들이 인간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멸종시키기로 계획을 바꿨다! 그만큼 인간 이외의 종에게 거짓말은 핵무기 이상으로 위협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 드라마, 문학, 영화 등 대부분의 예술 장르도 허구의 정교한 구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거짓말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의도적으로 남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을 제외하면 거짓말에 관대한 편이다.


거짓말일수록 체계적이고 디테일이 살아있어야 효과가 커진다. 가톨릭의 천사를 예로 들어보면 천사라고 다 같은 천사가 아니다. 하느님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세라핌부터 시작해 케루빔, 좌품천사, 주품천사, 역권천사, 능천사 등 아홉 계급이 있다. 소설이나 영화 등 플롯이 정교할수록 더 많은 인기를 끄는 것과 원리가 같다.

때문에 정교한 허구를 생산하는 일은 작가나 감독 같이 전문가의 영역에 속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sns의 확산에 인공지능의 편리성이 더해져 정교한 허구를 생산하는 작업이 간편화됐다. 과거에는 허구를 생성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믿고 추종하는 사람의 수가 월등히 많았던 반면 지금은 생성하는 사람의 수도 믿는 사람의 수와 대등할 정도로 많아졌다.


인스타 유저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의도적 연출과 감정 조작, 과장된 반응을 통해 '나'를 연기한다. 개인 브랜딩이라는 미명 하에 자신의 정체성조차 허구의 방식으로 조작한다. 가상의 정체성이 진짜 나를 대체하는 것이다.


개인뿐 아니라 집단적 허구도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sns를 통해 확산되는 짤방, 조작된 뉴스, 감동적인 가짜 스토리는 인간의 감정과 분노, 유머, 믿음을 조작하고 '공감'이라는 명분으로 집단적 환각 상태를 형성한다.


나아가 우리의 정치, 경제, 문화는 브랜드화되고 모두가 팬덤의 서사로 바뀌고 있다. 급기야 이렇게 말한다.

“더 이상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믿고 싶은 것을 믿게 만드는 기술이 중요하다.”


허구의 매력 중 하나는 허구라는 것을 쉽게 판별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알고 속는 거짓말은 유머로서 존중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기만이고 사기다. 타고난 거짓말 생성기계인 인간은 다행히도 거짓말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거짓말은 진위를 판별하기 어렵다. 앞으로는 거짓말과 진실의 경계가 더 모호해질 것이고 아예 참. 거짓이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믿을 수 없다. 네가 하는 말이 사실인지 모르겠다. 더 무서운 일은 너 자신도 참, 거짓을 모른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는 유리한 말만 믿는 것이다. 너의 진실은 알 도리가 없지만 나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는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너의 의도는 모르지만 내가 좋게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세 번째는 속지 않는 것이다. 완전히 속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니 속을 것을 각오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선택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따지지 않는 것이다. 너의 진실을 따지지 않고 너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것이 없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하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다 필요 없는 짓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사소한 문제가 생긴다. 타인의 호의와 배려를 기대하기 어렵다. 보이스 피싱 같은 호의 뒤에 숨은 악의를 판별할 능력이 없으니 어느 것도 믿지 않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고객님 보험료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소개드리려고요."

"네, 댁이나 많이 아끼세요."


뭐 어쩌겠나? 실재보다 시뮬레이션된 허구의 이미지를 신뢰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작은 부작용인 것을.


"거짓말은 사기다. 그러나 거짓말을 모두가 믿는다면 그것은 질서가 된다."


그러니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서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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