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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Aug 31. 2019

너와 나를 위로하는 말

내게 큰 위로가 되는 말이 있다. 

모두가 불행하다.


이 말은 상처를 치료하는 마법 같은 효력이 있는데, 신경질 나다가도 이 말만 들으면 그냥 저냥 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 불행하니까, 나도 불행해도 괜찮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보면, 극중 김희성이 자신과 파혼 하려는 고애신의 편을 들어, 기절한 채 하고 광에 갇힌 함안댁과 행랑아범을 구해주는 장면이 있다. 이후 국밥집에 마주 앉아 밥을 먹으려는데 함안댁의 씁쓸한 표정을 보고 김희성이 묻는다. 

“내가 그리 안돼 보이는가?”

“어데예? 누구하나 잘된 사람이 없어보여서 그라지요.”


좋아하는 여인을 위해 그 여인을 포기한 남자, 김희성.

좋아하는 남자 때문에 평생을 ‘흠 있는’ 여자로 살기로 결심한 고애신.

맺어질 수 없는 여자 옆을 나란히 걸으며 언제든 물러날 준비를 하는 최유진.

여기에 조그만 애정도 받지 못하고 악역을 자처하며 필사적으로 그녀를 지키는 구동매가 합세하면 거대한 비극이 완성된다.      


그리스 비극의 주요 원리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는 테바이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아 숲속에 버려졌다. 그 후 파란만장한 삶을 살며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된 오이디푸스는 흉흉한 소문을 듣는다.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으며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소문, 오이디푸스는 그럴 리 없다며 사람을 고용해 소문을 확인케 하니, 청년 시절에 마차 접촉사고로 다투다가 죽인 남자가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절망에 빠진 오이디푸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소문을 확인할 것을 명한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부인이 친어머니겠냐는 것, 그는 괴물 스핑크스를 죽이고 국민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됐으며 선왕의 왕비와 결혼했을 뿐인데. 그러나 알고 보니 선왕이 바로 자기가 죽인 마차의 주인이었고 자동으로 마차 주인의 부인은 오이디푸스의 어머니, 즉 현재의 부인이었던 것이다. 


이후 어떤 식으로 비극이 전개될지는 얘기하지 않겠다. 여기까지만도 충분히 비극이니.

말하고 싶은 것은 오이디푸스가 소문을 악성루머쯤으로 치부하고 확인해보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 신하 모두, 친구 모두. 심지어 어머니이자 부인인 왕비도 오이디푸스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욕구’를 저지하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오이디푸스는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사실 확인을 하고자 했으며 결국 해냈다. ‘그 어려운 것을.’


그래서 얻은 게 뭔가? 

오이디푸스는 하늘 볼 면목이 없다며 자기 눈알을 뽑아 방랑의 길을 떠났으며, 어머니 이오카스테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게다가 테바이 국민들은 용맹하고 관대한데다 잘생기기기까지 한 왕을 잃고 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세익스피어의 <햄릿>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추구하면 할수록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 몰랐으면 좋을 진실에 가까와지더니, 종국에는 장인 죽고, 약혼자 죽고, 작은 아버지 죽고, 어머니 죽고, 약혼자 오빠 죽고, 자기도 죽는 완벽한 비극에 도달한다.     


진실은 불편하며 사실은 늘 거짓보다 가혹하다. 그럼에도 사실을 알고 싶고 진실을 추구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신(神)이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 넣은 ‘저주’ 일 것이다. 인간을 만들고 보니, 너무 뛰어나 그냥 내버려두면 다른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고 마침내는 신에게 반항할 것 같으니 자멸할 수 있는 매커니즘과 코드를 심어둔 것이라 생각한다. 진실을 알고 미치거나 도망가라고.      


하나 더, 인간에게는 또 하나 기묘한 충동이 있는데 행복을 못 견뎌하며 불행을 편하게 느끼는 것이다. 행복은 행색이 초라해 가까이와도 알아보지 못하고, 곧 다른 곳에 눈을 돌리게 한다. 아니면 너무 단 케이크처럼 사람을 질리게 하거나 무감각하게 만든다. 


그에 반해 불행은 명확하며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동정심을 자아내고 점염성이 강하다. 게다가 불행은, 끈질기고 포기를 모른다. 

때문에 행복은 짧게 지나가고, 기다림은 길며, 불행은 끝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신의 저주이며 운명이다.     


Good day, Be Happy.

너무 쉽게 주변의 행복을 기원하지만 실상 바라는 건 그들의 불행이다. 최소한 나를 빼놓고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모두가 불행하다. 다행이다. 나만 불행한 게 아니어서.  마음이 편해지고 생(生)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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