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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Sep 19. 2019

당신의 내일은 어떻습니까?

영화 <아저씨, 2010>에 보면 원빈의 멋진 대사가 나온다.

“니들은 내일을 보고 살지? 난 오늘만 봐. 내일 보고 사는 놈은 오늘만 보고 사는 놈에게 죽는다!”

언제나 현재가 우선이라는 실리적 진실을 일깨워주는 대중문화 속 살아있는 명언이다. 

실제 과거나 미래는 기억하고 추정할 뿐 경험할 수 없다. 경험할 수 있는 시간대는 오직 현재뿐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존재하는 것은 ‘현재’라는 시간이다. 

고야,  <자식을 잡아 먹는 사투르누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간에 대해 보다 명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현재-미래로 연결되는 흘러가는 시간은 ‘크로노스’라고 했고, 인간의 주관적 시간 또는 결정적 순간을 ‘카이로스’하여 따로 구분했다. 

이런 구분에 따르면 철학적으로 실재 존재하는 시간은 카이로스뿐이지만 인간이 총체적으로 느끼는 시간은 크로노스라고 할 수 있다. 


크로노스는 제우스의 아버지로 자신의 아들들을 차례차례 집어삼킨 티탄족이다. 고야는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라는 작품에서 크로노스(시간)가 가진 파멸적 속성을 표현했다. - 사투르누스는 크로노스의 로마식 이름으로 토성(Saturn)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시간(크로노스)은 모든 걸 집어삼키며 거대한 우주에서 인간을 미천하고 하찮은 존재로 전락시킨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간, 카이로스는 다르다. 카이로스는 제우스의 막내둥이로 기회의 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 그는 앞머리는 길어도 뒷머리가 없어 한번 지나치면 붙잡을 수가 없다. 즉 눈앞에 나타났을 때 잡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난 내일을 싫어했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미래가 걱정돼서 할 수 있는 한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고는 했다. ‘이러면 이렇게 해야지, 저러면 저렇게 해야지’ 하는 머릿속 시뮬레이션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어떤 날은 몇 시간씩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터져 버릴 것 같은 머리통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보다 몇 살 어린 여자 변호사를 만났다. 서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사법고시 성적이 좋아 판사나 검사로 임용되지도 못했으니 처음부터 잘나가는 변호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자 변호사들이 꺼리는 형사사건을 전문적으로 맡아 처리하면서 착실히 경력을 쌓았고 그 덕택에 조그맣긴 하지만 젊은 나이에 파트너 변호사가 되었다.     


비즈니스 때문에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눈 통에 조금 친해진 그녀는 우울한 내 표정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일이 기대되지 않아요? 내일은 또 어떤 좋은 일이 생길까? 새롭잖아요?”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미치고 팔짝 뛸 뻔했다. ‘내일이 기대돼? 좋은 일이 생겨? 내가 무슨 어린 애야?’


직업상의 문제였는지 몰라도 그 당시 내게 ‘좋은 내일’은 없었다. 그것이 황금연휴일지라도. 

삶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보면 저런 어마어마한 말을 저리 쉽게 할 수 있을까? 그녀의 대담함에 깜짝 놀랐으며 당연한 듯 여기는 그 얼굴에서 신경질마저 났다. - 그 뒤 그 변호사를 만나는 일은 현저히 줄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달라서 같이 있기도 싫었다.     


내일이 주는 불확실성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을까? 내가 예상할 수 없고 싫어할 만한 어떤 일이 생겨날 가능성, 그런 가능성이 조금도 없는 내일은 없나?      

(좌) 비트겐슈타인  (우) 러셀

살아서 플라톤과 비슷한 반열의 철학자에 오른 비트겐슈타인과 그의 스승 버트런드 러셀의 터무니없는 논쟁을 예로 들어보자. 

공과대학을 다니며 비행기 엔진 설계에 몰두하던 비트겐슈타인은 당대 수리철학의 대가 버트런드 러셀을 찾아간다. 철학과 관련해 학사학위 하나 없던 비트겐슈타인은 트리니티 칼리지의 교수인 러셀을 졸졸 쫓아다니며 못 살게 굴었는데, 급기야 러셀의 교실에 쳐들어가 ‘이 방에 코뿔소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냐고 따졌다.

 

버트런드 러셀로서는 미치고 환장했을 것이다. 보기에도 뻔한 사실을 확신할 수 없다니,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아마 러셀이 그저 그런 철학자였다면 비트겐슈타인은 그 자리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러셀은 22살 젊은이의 천재성을 대번에 알아봤다. 


러셀은 방안에 코뿔소가 없다는 명제를 논리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비트겐슈타인을 확신시키기 위해 방 안에 있는 모든 책상을 뒤집어 볼 수밖에 없었다.  

“봐, 책상을 다 뒤집어 살펴봤는데도 코뿔소는 없네. 이 정도면 코뿔소가 없다는 것을 충분히 확신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고개를 저으며 물러나지 않았다. 책상 밑에 코뿔소가 있었지만, 책상을 뒤집는 순간 미지의 힘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억지 같지만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논쟁을 포기했다.      


코뿔소 논쟁에서 누가 옳았는지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고작 방에 코뿔소가 없다는 것도 확신할 수 없는데 내일에 대해 무슨 확신이 있다고 내일을 기대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내게 필요한 건 확신이다. 확신할 수 없어 불안하고 불안해서 내일이 싫다. 하지만 모르는 게 당연하고,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다면? 불안한 게 당연한 거라면?   

  

우리가 아는 우주에는 ‘암흑물질’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영어로는 다크 매터(dark matter)인데, 글자 그대로 ‘다크’해서 눈에 보이지 않고 어떤 장치로도 관측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다수 천체 물리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이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직 과학적인 근거와 방법으로만 진실을 추구하는 현대의 물리학자들은 왜 보이지도 않는 암흑물질이 있다고 믿고 있을까? 


근거를 들어보면 상당히 그럴 듯하다. 우리 은하계에 속한 별들은 태양계의 행성처럼 모두 한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다.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은하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별일수록 회전하는 속도가 점점 느려질 것이라고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 굳이 케플러의 궤도법칙을 설명하지 않겠다. 


그런데 실제 관측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회전속도는 은하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난감해졌다. 그들이 측정한 은하계의 총질량만 가지고는 별들의 이런 움직임을 전혀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자라는 질량이 전체의 10%나 20% 정도라면 측정 오류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모자라는 질량이 총질량의 70%를 훌쩍 넘는다면 둘 중 하나였다. 그동안의 중력이론이 잘못됐거나 ‘보이지는 않지만 상당한 질량을 가지고 있는’ 암흑물질이 있거나.      


어지간하면 그동안의 우주이론을 수정할 만도 한데 어지간하지 않았나보다. 과학자들은 기존의 관측결과와 이론을 뒤집기보다 암흑물질이 있다는 데 걸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은하계 전체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물질이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는 가설에 말이다.     


우주에 암흑물질뿐이라면 이런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이 우주에는 암흑에너지도 있다고 한다. 이 암흑에너지로 말할 것 같으면 전체 우주의 구성성분 중 무려 73%를 차지한다고 한다. 암흑물질이 겨우(?) 23%인데, 그보다 3배나 더 많은 것이다. 짐작했겠지만 암흑에너지도 암흑물질과 같이 보이지 않고 관측되지 않는다.  

    

이야기 시작한 김에 이 암흑에너지는 왜 또 있다는 건지 과학자들의 설명을 요약하겠다. 그런데 이 얘기를 하려면 먼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설명부터 해야 한다. 혹시 우주가 팽창하는 사실을 몰랐다 해도 전혀 창피할 것 없다. 천재 중의 천재 아인슈타인도 몰랐던 사실이니까.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크긴 해도 크기가 고정돼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안이한 생각은 물리학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 시킨다. 왜냐하면 우주에도 만유인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제한된 공간에 이 많은 별들이 다 있다면 그 별들이 서로 조금씩 잡아당겨 언젠가는, 아주 먼 미래겠지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 인간이 전부 사라지고 지구가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미래에는 모든 별들이 하나로 똘똘 뭉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먼 미래라면 모든 별이 하나가 되든 둘이 되든 우리 사는데 아무 상관없겠지만,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치 않다. 아무튼 물리학자들이 천체를 관찰해보니 별들이 서로 가까워지면서 뭉쳐지고 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우주상수를 도입함으로써 수식 상의 문제를 해결했다. 당시 분위기상 우주는 작아지지도 않고 커지지도 않는 정적인 우주론이 대세였기 때문에 아인슈타인도 척력의 힘을 가진 우주상수를 상정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을 보완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우주상수는 아인슈타인의 명성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된다. 지금은 대기권 밖의 망원경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는 에드윈 허블이 1929년에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우주의 크기가 멈춘 것이 아니라 계속 커지고 있는 것이라면 우주상수는 전혀 필요 없었다.      

허블 우주망원경

아인슈타인은 대인배 답게 깨끗하게 실수를 인정했고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 역시 놀라워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1998년까지 살아있었다면 한번 더 크게 놀라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는 그냥 팽창하고 있는 게 아니라 가속팽창, 즉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만약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지껄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다음 기회에 설명하겠다.      


우주가 조금씩 커지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가속도를 받아가며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과학자들은 다시 당황했다. 도대체 우주를 끝없이 확장 시키는 에너지는 또 뭐냐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사실 우주가 가속팽창을 하고 있다는 근거도 잘 믿기지 않는다. 일반인들에게는 엄청난 구라 같이 느껴진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과학자들은 복잡한 산식을 통해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또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주를 가속팽창 시키는 큰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에너지의 이름은 암흑에너지라고 명명했다. 


아직 암흑물질이 뭔지도 설명하지 못하면서 그 암흑물질을 정당화하기 위해 암흑에너지라는 더 큰 미제사건을 인류에게 안긴 것이다.  - 그 사이에 우주가 가속팽창하고 있다는 가설도 빠지지 않는다 .

    

갈릴레이가 조악한 망원경을 만들어 밤하늘을 관측하면서 시작된 근현대 천체 물리학의 역사를 보라. 뉴튼, 케플러, 티코브라헤, 맥스웰, 아인슈타인.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어찔한 천재들이 이전 연구를 바탕으로 조금씩 발전 시킨 결과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다. 그리고 그것이 뭐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우주에서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빼면 우리가 아는 보통물질은 4% 정도에요.”     


답답하다. 미치겠다. 가설에 가설을 거듭하더니, 고작 '뭔지 모르겠다', 는 소리나 하려고 여태 과학적 연구를 해왔다는 말인가?      


이 모든 미친 짓은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알고 싶었던 소박한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밤하늘은 왜 어둡지? 반짝이는 저 별은 뭐지? 죽으면 정말 별이 돼?”

그래서 인간은 알고자 했고 불확실한 것들을 조금씩 확실한 것들로 바꿔나갔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했다. 그동안 알아낸 것보다 수만 배는 많은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직면한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가 정답이라고 한다. 우주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불확실하고 불안한 게 당연한 거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가설에 불과한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당연하게 여기며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다음에는 또 어떤 당황스러운 결과가 튀어나와 자신들을 좌절시킬지도 모르면서.


이런 식이면 지금쯤, 버트런드 러셀의 방에서 사람의 눈을 피해 백 년 이상 숨어있던 코뿔소가 슬며시 기어나와 어슬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절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미래는 불확실하다. 우주의 96%가 모르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데 뭔들 정해져 있을까? 운명은 대하(大河)처럼 흐르고, 그 방향은 불확실한데 개인의 노력이 무슨 변수가 될까? 내일을 예측하는 게 무슨 소용 있을까? 다 내던지고 막 사는 게 정답 아닐까?      


불안하지 말자. 내일은 모르니까.

인간은 과거-현재-미래, 크로노스의 시곗바늘 위에서 살지만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카이로스, 주관적 시간일 뿐이다. 

당신이 만약 카이로스를 살고 있다면 매 순간 기회이며 결정적 순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내일은 불확실하니 오늘 "구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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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일러스트: 트위터 아이디 '내일다음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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