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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n 29. 2023

죽을 바에는 라흐마니노프를 듣는다

때는 1978년, 뉴욕시 에버리 피셔홀.

75세의 피아니스트 호로비츠가 지휘자 주빈 메타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한다.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는 그 자신이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로 평가받았지만 직접 작곡한 피아노협주곡 3번을 완벽하게 연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곡을 헌정한 사람이 요제프 호프만, 그러나 호프만 역시 '이곡은 나를 위한 곡이 아닌 것 같다'며 연주를 사양했고, 그의 피아노협주곡 3번은 극악한 난이도를 가진 악마의 콘체르토로 폄하됐다.

단, 호로비츠를 만나기 전까지.

"내 피아노 협주곡은 바로 이렇게 연주되어야 한다고 항상 꿈꿔왔지만,
살아서 이런 연주를 들을 줄은 기대하지 못했다."


호로비츠를 위해 곡수정도 마다않았던 라흐마니노프와 호로비츠의 우정은 우선 제쳐두자.


세기의 피아니스트로 평가받는 호로비츠 역시 세월을 빗겨가지는 못했다. 유튜브 화질이 문제가 아니다.

위풍당당했던 전성기의 모습은 확연히 수그러들었다.

손가락을 곧게 펴고 페달 사용을 최소화하며 기관총을 연사하듯 건반을 튕기듯이 내려치며 초인적인 손목힘을 과시했던 노장은 왠지 잔뜩 움크린 모양새다.


그러나 그 움크림은 3악장 피날레를 위한 것이었다.

심포니의 날카로운 화음과 고음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웅장함과 신비함을 더해가더니 마치 직접 지휘를 하는 것처럼 왼속을 번쩍 치켜들었다. 이제 곡은 2분이 채 남지 않았다.

은 피셔홀 공중을 가로질러 객석 3층 어디론가 향하는데, 단 한번의 큰 도약을 위해 잰 걸음을 뛰는 것처럼 통통거리던 그의 연주가 마지막 텐션을 높이기 위해 살짝 잦아든다.

그리고 피날레의 시작!

끝날 듯 말 듯, 은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일 수도 있다는 말을 연주로 증명하며, 특유의 열손가락 곧게 펴기 주법으로 홀린 것마냥 건반을 두드리더니 심장 박동소리를 극강으로 만들고 문득 멈췄다.

끝난 것이다.

지휘자 주빈 메타 역시 자신이 곡을 끝냈다는 것에 살짝 놀랐다가 호로비츠의 얼굴을 보며 곧바로 환한 미소를 짓는다.

"오! 호로비츠여. 역시... 당신이었군요."


오랜만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감상하며,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나은 것 하나를 추가했다.     


https://youtu.be/D5mxU_7B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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