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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l 17. 2023

모든 적의를 담아 탱고를..

탱고를 추는 남녀의 표정을 본 적이 있는가?


상체를 뒤로 젖히고 과장스런 몸동작으로 상반되게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그런 탱고가 아니다.

*그건 콘티넨탈 탱고로 익숙한 다른 장르의 탱고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탱고는, 탱고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아르헨티나 탱고다.

반주하나 없는 적막한 스테이지에 등장한 여자 댄서는 그녀의 상대가 누구일지 궁금해한다.

이윽고 하이톤의 기타솔로 반주가 울리기 시작하면 머쓱한 표정의 남자 댄서가 인사도 없이 맞은 편에 나타난다.

그리고 몸을 밀착하여 마주선다.

그들의 표정은 경색됐고 진지하며 어느 부위에 먼저 손을 얹을지 서로를 경계한다.

완전히 아래로 깔린 시선, 무엇을 기다리나.


비극적인 어코디언의 음색과 함께 여자댄서가 제자리를 맴돌며 기회를 엿본다.

처음에는 느리게 두번, 그리고 두번은 빠르게 공격.. 슬로우 슬로우 퀵퀵.

여성 보컬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파고들면 남자의 리드에 마지못해 따라가는 여자.

그들의 발놀림은 꼭 빙판 위의 피겨스케이팅 같이 매끄럽다.

템포가 빨라지면 댄서들의 발놀림이 날아오르며 경쾌해진다. 학이 다리를 꼬는 것처럼 여자의 긴 다리가 여기저기서 휙휙 들어올려진다. 정말 난데없다.


스텝이 꼬이면 거기서부터 탱고라고 했던가? 하지만 그들의 스텝은 꼬이는 법이 없다. 두번의 공격과 두번의 방어라는 원칙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는 덕분이다. 아무리 화려해도 아무리 복잡해도 남녀는 그들만의 탱고를 멈추지 않고 이어간다.


궁금했다. 왜 저들은 탱고를 추는 것일까?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탱고는 원래 '멈추지 않는 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서로를 끌어안고 있지만 웃지는 않는다. 가끔은 밀어내고 너무 멀어지나 싶으면 당긴다. 춤을 끝내고 싶으면 언제든 'Thank you'라고 말하면 된다.


탱고의 기본 정서는 우울함이다. 아르헨티나 작가인 보르헤스는 탱고에서 에로틱한 유희를 벗겨내면 내면의 진실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 내면은 고독과 향수이다. 게다가 춤추는 상대에 대한 감정은 사랑보다는 적의와 경계에 가깝다.

 


영어 hostility (적의)와  hospitality (환대)는 host라는 비슷한 어원을 가지고 있다.

host는 손님을 초대한 집주인으로서 손님을 기꺼이 환대해야 마땅하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내집을 찾아온 손님은 언제든 적으로 변하여 나와 가족을 죽이고 내것을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hospitality는 무조건적인 환대가 아니라, '오늘은 내집을 방문한 손님으로서 환대할 터이니 조용히 머물다 떠나라'는 경고가 담겨있다.


탱고를 내내 보다보면 hostility 와 hospitality 처럼 경계심과 애정이 교차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슴은 닿았지만 마음은 열지 않았다.

사랑하지만 영원하지는 않다.

너는 떠날 것이고 나는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연인'이자 '적'이다.


불확실한 세상에 몇가지 확실한 것 중 하나는 '영원한 것은 없다'이다.

사랑은, 영원은 커녕 일시적인 것도 못된다. 한순간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그 순간에도 나를 떠날 널 의심하고, 변해버릴 내 마음을 의심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대와 춤을 출 수 있다면 그 춤은 다름아닌 '탱고'다.


그대와 마지막 탱고를... 아디오스!


https://www.youtube.com/watch?v=JaEsttvrXkY  (탱고, 참고영상은 여기서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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