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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May 24. 2024

미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매력적이었으며,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나 달라 보였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구두가 딱딱거리면서 돌길 위로 걸을 때 왜 아무도 자기처럼 정신을 잃지 않는지, 그녀의 베일에서 나오는 숨소리에 왜 아무도 가슴 설레하지 않는지, 그녀의 땋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거나 그녀의 손이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 혹은 황금 같은 미소를 지을 때에도 왜 모든 사람이 사랑에 미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중.

대학시절 연극을 좋아했던 나는 가끔 혜화동에서 연극공연을 보곤했다. 사실 연극을 좋아했던 건 아닌 것 같다. 좋아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희곡 작가인 어머니를 따라, 드라마센터를 방문해 고 유치진 선생님을 뵈었던 인연과, '영화는 돈주고 보면서 연극은 왜 공짜표만 기다리니?' 라는 어머니의 힐난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연극이 끝나면 있는 힘껏 박수를 치고, 별것 아닌 박카스 몇 상자를 들고 무대 뒤를 찾아가 배우와 연출자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나에겐 그게 더 좋았다. 그들은 대부분 가난했지만 밝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보다 깨끗한 수정체를 가지고 있었던 그때의 나는 눈이 부셨고, 그들이 부러웠다. 그들의 열정이.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유명 연출자가 라디오 방송에서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왜 오랜시간 연극에만 몰두하셨는지. 솔직히 연극은 여러가지로.."

"돈이 안된다는 말씀이죠?"

"(무안해 하며) 네. 꼭 그런 건 아닌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연극에 미친놈은 진짜 미친놈이니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고."


쿵, 그때 가슴 속 어디 하나가 고장난 것처럼 무너졌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 미쳐서 살아야겠다. 저게 인생이야...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도자기가 비뚫게 만들어진다는 이유로 손가락을 잘라버렸던 그 정도의 열정으로...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그러나,

미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건 대학 4학년. 

철학과 소설에 미쳐 사느라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도 이틀 후에 알았던 내가, 

우리나라의 월드컵 본선 경기를 보고 있던 동생에게 시끄럽다고 TV끄라고 했던 내가, 

취직을 했다. 


그리고 미쳐야 한다는 강박관념만이 내 안 부서진 어느 틈바구니를 파고들어가 간신히 남았다.  


토마스 만의 단편에 나오는 토니오 크뢰거처럼, 난 그저 '길잃은 속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사랑에 미치고, 연극에 빠지면 연극에 미치고, 글쓰기에 빠지면 글쓰기에 미친다. 이 영역은 아무도 들어오라고 강요하지 않지만, 일단 입장하면 퇴장은 쉽지 않다. 좀 나갔다 싶으면 다시 기웃대다 들어오고, 이러면 안돼, 도망 나갔다가 몰래 기어들어오고. 나중에는 창피해서 글 쓴다는 말도 하지 못한다. 


그래도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왜 모두가 '어떤 것'에 미치지 않는지. 그러고도 '잘' 살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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