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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May 27. 2024

<바비>의 철학 "나는 그냥 나야, 바비!"

"넌 그냥 너야. 다른 것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영화 <바비>의 철학은 굳이 제가 설명하겠다고 말하기도 민망해요.

후반부로 갈수록 여러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실존철학이 툭툭 터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화 종반부 빌리 아일리시가 부르는 영화 주제곡 'What I was made for'는 대놓고 노래합니다.

나는 왜 태어난 걸까?


가사를 좀 볼까요?


"나는 행복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 내가 아닌 그것, 하지만 내가 될 수 있는 그것, 내가 기다리는 그것, 내가 되어야만 했던 그것.."


그런 식으로 키워졌든, 교육 받았든, 사회의 구성원으로 태어난 인간은

암묵적으로 부여 받은 role이 있습니다.

가장 익숙한 논제가 '여자로 태어난 것인가, 여자로 길러진 것인가?' 입니다.


함께 살기 위해, 또는 조금 편하게 살기 위해 인간은 묵묵히 자신의 role을 수긍하고 때로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소쉬르의 언어학적 탐구에서 시작한 구조주의는 레비스트로스에 이르러 사회관계망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를 규정합니다.


나이브하게 설명하면,  A씨는 어느 회사의 과장이며,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남편이며, 누구의 아빠인 것입니다.


이렇다보니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자기 이름 대신 누구아빠, 누구엄마로 불리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 거죠. '도무지 나는 뭐지? 내가 뭐 돈벌어 오는 기계인가? 혹은 애 낳고 키우는 기계인가?'


이것을 두고 '실존적 자각'이라 일컫습니다.

샤르트르는 도무지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소설 <구토>에서 '돌멩이'와 '뿌리'를 실존적 자각의 촉매로 이용했습니다.


주인공 로캉탱씨는 물수제비뜨기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따라해 볼 요량으로 돌멩이 하나를 줍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구토'를 일으킵니다.

돌멩이에 징그러운 벌레가 붙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못 견디게 미끌거렸던 것도 아닙니다.

무엇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돌멩이 못지 않게 유명해진 마로니에 나무의 뿌리를 발견합니다. 돌멩이와 뿌리의 공통점은? 바로 아무짝에도 쓸데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전거, 유모차, 의자, 시계 등 상당수의 사물은 나름의 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모든 사물은 날 때부터 본질이 부여됐다고 믿어 왔것만,

그게 아니라는 진실을 직면한 거죠.


여기서 샤르트르의 명언이 자연스럽게 도출됩니다.


"인간은 목적없이 이 세상에 던져졌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다시 영화 <바비>로 돌아가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일 먼저 실존적 자각을 깨닫는 캐릭터는 바비가 아니라 빌런이나 다름없는 켄이었습니다. 인형 제작사 마텔이 바비 인형이 공전의 히트를 치자 수익 다각화를 위해 남친 캐릭터 켄을 생산한게 문제라면 문제였겠습니다.

켄은 날 때부터 바비의 남친이라는 본질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바비가 자꾸 거리를 두고 내외하니까 바비랜드에 가부장제도를 도입해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바비와 켄, 그게 내가 만들어진 이유거든. 네가 바라봐 줘야 난 존재 의미가 있어."


고백 멘트였다면 제법 로맨틱할 수도 있겠지마는, '넌 도대체 바비의 남친 빼면 뭐야?'라고 묻는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바비도 마찬가지였죠.

 

"여자로 사는 거 정말 힘들다. 마르되 너무 마르면 안되고 건강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말라야지. 외모관리는 필수지만 너무 예뻐서 남자를 부추기거나 여자의 적이 되면 안돼. 다른 여성과 연대하면서도 튀어야 하거든."


주변의 요구와 기대를 만족시키는 것은 끝이 없고 때로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일깨우는 글로리아의 찰진 대사입니다.


대통령 바비, 의사 바비, 인어 바비도 있지만 어디에도 이상하고 우울하고 미친 바비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상하고 우울하고 미쳤습니다. 이 정도 했으면 우리는,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때가 됐다는 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되려고 허락을 구하거나 원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인간인 것에 허락은 필요없고 심지어 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간은 실존적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갈 결단과 의지, 그리고 절대적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샤르트르)


이것말고도 영화에 대해 할 말이 더 있겠지만, 자꾸 제 귀를 간지럽히는 루스 핸들러(바비 발명가)의 대사로 마무리 해보겠습니다.


"인간으로 사는 건 꽤 불편해. 덜 불편해지려고 자꾸 뭘 만들지. 가부장제나 바비 같이. 그러다 결국 죽지."


어차피 죽으면 다 끝날 거 뭐 이리 애쓰고 사나, 이 말인가요?

그건 아닐겁니다. 자꾸 뭘 바꾸는데만 몰두하지말고 그대로의 자신을 좀 보라는 것.

실존적 자각을 의미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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